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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와 나는 아웃사이더”… 동질감 드러낸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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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15 14:00:57 수정 : 2025-10-15 14:00:56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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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군인에서 대통령 된 아이젠하워
워싱턴 정치 멀리해 온 트럼프와 비슷
“美 우선주의 비전 더욱 발전시킬 것”

미국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953년 1월∼1961년 1월 재임)는 한국에서 크게 두 가지 역사적 사실로 기억된다.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를 무릅쓰고 6·25 전쟁 휴전을 밀어붙인 것, 그리고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두 나라 간 동맹의 기틀을 닦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젠하워의 업적을 기리며 그가 생전에 추구한 비전을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해 눈길을 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 방송 화면 캡처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아이젠하워의 13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아이젠하워는 1890년 10월 14일 미 중서부 캔자스주(州)에서 태어났으며, 대통령으로서 두 차례 임기를 수행하고 물러난 뒤 8년여가 지난 1969년 3월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트럼프는 먼저 군인으로서 아이젠하워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졸업생인 아이젠하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최고사령관을 맡아 유럽 대륙에서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는 미·영 연합군을 지휘했다. 특히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독일 패망을 앞당겼고 그 공로로 미군 대장에서 원수로 진급했다. 전후 정계에 진출한 그는 1952년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1956년 재선에 성공해 총 8년간 대통령을 지냈다.

 

평생 군대에만 있다가 정치 입문 직후 대통령이 됐다는 점에서 아이젠하워는 연방의회 상·하원 의원은커녕 주의회 의원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와 닮았다. 실제로 트럼프는 이날 메시지에서 아이젠하워를 “2016년 내가 처음 당선될 때까지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된 정치적 아웃사이더”라고 부르며 동질감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아이젠하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원칙을 지켰다”며 “그 원칙이란 바로 ‘평화는 미국의 힘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젠하워는 미국 국경 안쪽의 안정과 번영이 국경 바깥 외국에 대한 약속 이행보다 우선이란 점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이집트에 모인 세계 각국 정상들 앞에서 ‘가자 지구 평화 협정’ 체결식을 주도한 뒤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는 미국의 압도적 국력을 토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양측을 동시에 설득하고 때로는 압박한 끝에 최근 ‘가자 지구 평화 협정’ 체결에 성공한 자신의 외교적 성과를 2차대전 승리의 주역인 아이젠하워의 업적에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대선에 도전한 아이젠하워는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최단 시일 안에 전쟁을 끝낼 것”이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실제로 그는 취임 직후 전쟁 중단을 극구 반대하는 한국 이승만정부에 압력을 가해 휴전을 성사시켰다. 대신 이승만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미 동맹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안보 불안을 달랬다.

 

트럼프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재임 중 추구한 비전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우리 행정부는 국내 번영과 해외 평화의 동시 증진을 계속 추진함으로써 미국 우선주의라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비전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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