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는 김세영(32·메디힐)의 별명은 ‘빨간 바지의 마법사’이다. 대회 최종라운드에 늘 빨간 바지를 입고 나와 통산 12승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종일 드라마틱한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자주 연출해 ‘역전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2020년 11월 펠리칸 위민스 챔피언십 우승을 마지막으로 마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슬럼프가 길어지고 나이도 서른 살을 넘기자 이제 한 물 간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에 김세영은 지난 시간을 돌아본 결과 2020년 우승 이후 그동안의 성과에 안주해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지난해부터 나이를 먹더라도 신인의 자세로 다시 시작하자고 스스로 굳게 다짐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자 김세영의 마법이 드디어 다시 작동했다. 김세영은 19일 전남 해남군 파인비치 골프링크스(파72·6785야드)에서 열린 국내 유일 LPGA 투어 대회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총상금 230만달러) 4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1개를 묶어 5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24언더파 264타를 적어낸 김세영은 하타오카 나사(25·일본)를 4타 차로 따돌리고 대회 내내 선두를 놓치지 않는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김세영은 5년 만에 개인통산 13승 고지에 올라 완벽한 부활에 성공했다. 우승 상금은 34만5000달러(약 4억9200만원). 2019년 시작된 이 대회는 한국 선수 혹은 한국계 선수들이 계속 우승할 정도로 강세를 보이다 지난해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이룬 해나 그린(29·호주)에게 타이틀을 뺏겼는데 김세영이 보란 듯이 트로피를 되찾아 왔다.

김세영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긴 부진의 터널에서 지난해부터 서서히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24개 대회에서 톱10에 5차례 진입했고 준우승과 3위를 세 차례 기록하며 샷감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이번 시즌에는 18개 대회에서 톱10 성적을 7차례 기록했고 6월 이후 3위만 세 차례 오르며 매 대회 상위권 성적을 냈다.
김세영은 이번 대회에서 페어웨이를 지키는 보수적인 플레이와 과감한 플레이를 적절하게 섞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라운드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김세영은 보기 없이 이글 1개, 버디 8개로 무려 10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두르며 전성기때의 날카로운 샷을 선보였다. 2라운드에서도 6타를 줄인 김세영은 거센 바람으로 선수들이 고전한 3라운드에서도 3타를 줄이며 선두를 굳게 지켰다.
김세영은 최종일 4타 차 선두로 나서 무난한 우승이 예상됐다.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바지를 입고 경기에 나선 김세영은 3번 홀(파3)에서 보기를 범하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5번 홀(파4) 버디로 가볍게 만회했다. 이어 7번 홀(파4)까지 3개 홀 연속 신들린 버디쇼를 펼쳐 경쟁자를 압도했고 9번 홀(파4)에서도 버디를 잡아 한 타를 더 줄였다. 김세영은 후반홀에서 파 행진을 이어가다 14~15번 홀에서 다시 연속버디를 잡아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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