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들에게도 내역 안밝혀… 기부활성화 걸림돌
도덕성이 생명인 시민·사회단체들이 재정 공개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회계’에 익숙지 못한 관행 때문으로 보인다. ‘스스로 떳떳하면 된다’는 내부적 자신감만 믿고 정작 재정 외부 공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단체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양적·질적으로 크게 성장한 국내 시민·사회단체의 이 같은 관행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남의 눈 티끌은 잘 보여도 제 눈 들보는 안 보인다’는 말처럼 자발적으로 재정을 공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시민·사회단체의 불투명한 회계장부는 기부문화 활성화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재정상황 대부분 ‘열악’=세계일보가 25개 시민·사회단체 재정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수입과 지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은 16개(홈페이지 공개 6개 포함)였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아름다운재단으로 수입 133억원, 지출 99억원을 기록했다. 다음은 YWCA연합회로 수입·지출이 각각 35억원이었으며, 참여연대(총 수입 16억원, 총지출 14억원), 녹색연합과 흥사단(각각 14억원), 한국소비자연맹(각 13억원), 경실련(총수입 12억원, 총지출 13억원) 순이었다.
지명도나 위상에 비해 재정이 열악한 곳도 많았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바른사회시민회의, 건강사회네트워크, 행정개혁시민연합, 시민정신 등은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대표적 시민단체지만 지난해 총수입이 1억∼2억원으로 국내 시민운동계의 열악한 현실을 반영했다. 사실상 시민단체 대부분이 쥐꼬리만한 수입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사회단체 금고는 ‘블랙박스’=문제는 시민·사회단체의 금고가 외부 사람들은 모르는 ‘블랙박스’라는 점이다. 총 지출·수입 규모를 아예 공개하지 않는 시민단체가 허다하다. 월별로 회계장부를 공개하는 단체조차 누구로부터 얼마를 후원·협찬받았는지, 또 어떤 사업에 얼마를 썼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행정안전부가 매년 정부 지원을 받은 비영리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사에서도 불투명한 회계문제가 반복 지적되고 있다. 지난 4월 공개된 ‘2007년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사업 평가 보고서’에선 150개 단체의 155개 사업 가운데 재정관리체계가 미흡한 사업 수가 29.68%인 46개로 평가됐을 정도다. 특히 애초 계획했던 보조금과 실제 집행된 사업비용이 차이가 났을 뿐만 아니라 아예 보조금을 사업계획과 다른 곳에 사용한 단체도 있다.
기업 후원금에 대한 관리는 더욱 엉망이다. 기업 후원금은 형식상이나마 감독 절차가 있는 국고보조금과 달리 아예 어떻게 쓰였는지 기업에 통지조차 되지 않는다.
◇검찰이 환경운동연합 보조금 유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지난 7일 서울 프레스센터 내 환경재단 사무실에 상자로 포장된 회계자료들이 쌓여 있다. /송원영 기자 |
대기업 사회공헌 분야 담당자는 “해마다 시민단체에 수십건씩 억대 단위의 후원금을 내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내역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후원금이 당초 용도대로 온전히 사용됐는지 알고 싶지만 기업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에 사후 보고를 요구하는 것이 꺼림칙해 속만 태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비공개 이유도 가지가지=“왜 장부를 공개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 “워낙 재정이 열악해 이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공개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이 역시 인력과 역량이 필요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났다”는 곳이 많았다. 일부는 “왜 공개해야 하느냐”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변철환 대변인은 “재정 투명성을 확보하라는 외부의 요구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재정 건전성만 보장되면 됐지 일일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나. 뉴라이트 회원은 우리의 활동에 감동하고 동의한 분들로 아직까지 재정 운영상황 공개를 요구해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한상민 조직국장은 “내부에서도 재정의 홈페이지 공개 요구가 있긴 하다”며 “홈페이지 공개는 선택의 문제로, 이런 시국에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더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석진 상임활동가도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건 회의 후 결정하겠다”며 “다만 후원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당연하며 최대한 투명하게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유은실 팀장은 “현재 홈페이지를 개편하는 중”이라며 “회계 전문가나 관련 일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체계적인 관리가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 팀장, 박성준·조민중·양원보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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