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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과 한 권의 책] 윤리적 숙련의 핵심은 자아가 비어있음을 깨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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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08 18:08:36 수정 : 2010-01-08 18: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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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노하우
프란시스코 J. 바렐라 지음/유권종·박충식 옮김/갈무리/1만1000원
윤리적 노하우/프란시스코 J. 바렐라 지음/유권종·박충식 옮김/갈무리/1만1000원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매일같이 강의실을 청소하던 친구가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게 말끔해진 강의실을 보며 한동안 우리는 모두 우렁각시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가 
김정연 갈무리 편집2부장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틈타 혼자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아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도, 어떠한 개인적 이득도 바라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 할 때에도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도망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마음의 경지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우리는 늘 무한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을 짓누르며 우월한 자가 되거나 아니면 ‘루저’가 되거나의 양자택일의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화폐와 개인적 이득을 위해서는 밤낮으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심해야 한다. 성공을 원한다면 남들이 안 볼 때 비자금을 모으고 스펙을 쌓아야지, 청소를 해서는 안 된다. 선한 의지가 이끄는 대로 살다가는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패배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자생존’ 논리의 모태가 되는 진화론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윤리적 노하우’ 저자 프란시스코 J. 바렐라는 주장한다. 그는 생명체는 바깥 환경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며 진화해 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세포가 스스로의 자원을 조직하여 성장하고 확장하듯이, 생물체는 자기생성적이다. 본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인지과정은 컴퓨터처럼 외부에서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흔히 경험한 만큼 보인다고 말하지 않는가? 인지란 바깥 세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구성하는 것이다.

바렐라에 따르면, 윤리적 숙련의 과정 또한 생물체의 자기생성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내면의 힘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 그는 서양철학이 ‘윤리적 초보자’로 전락했다고 지적하면서, 동양철학 전통의 대가들인 맹자, 노자, 나가르주나의 지혜를 참조하자고 말한다. 바렐라는 동양철학의 전통에서 크게 세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 윤리적 숙련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점(맹자의 성선설), 둘째, 숙련의 과정은 점진적이라는 점, 그리고 셋째는 윤리적 숙련의 핵심은 자아가 비어있음을 깨닫는 것에 있다는 점(도교의 무위, 불교의 공)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출간되는 바렐라 최초의 저작이며,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생명체 본연의 힘과 인간의 윤리적 성숙의 가능성을 연결시키는 그의 사상과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유권종 교수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박충식 교수는 상이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공동작업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 그만큼 바렐라의 사유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펼쳐지며, 읽는 이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바렐라의 말처럼 개개인의 ‘윤리적 노하우’야말로 우리가 당면한 위기의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급진적인 사상’이자 ‘강력한 처방’일지도 모른다.

김정연 갈무리 편집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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