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원조교제로 겨우 삶을 이어가는 가출 소녀다. 광화문 일대를 점령한 촛불시위는 그 아이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저녁마다 지하철역이며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는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동석’이 다니는 회사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린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동석의 눈에 교복 차림의 하나가 들어온다. 그 아이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끌어들인 동석은 다급하게 섹스를 요구한다. 두 남녀가 돈과 몸을 맞바꾸는 순간에도 오피스텔 밖에선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가 요란하다. 하나의 육체를 마구 탐하는 동안에도 동석의 머릿속은 금융위기 걱정으로 타들어간다.
동석은 하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비록 돈을 전제로 한 만남이지만 하나의 마음 한구석에도 동석을 위한 공간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원조교제를 단속하는 경찰의 감시망에 동석이 걸려들고, 소설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데….
청소년 가출과 원조교제의 심각성을 정면으로 다루지만 그게 소설 핵심은 아니다. 작가는 촛불시위와 금융위기로 얼룩진 2008년 여름의 그 이상하게 들뜬 열기와 기분 나쁜 습기를 반복해 묘사한다. 성중독증 환자처럼 하나와의 섹스에만 집착하는 동석에게서 자본주의 체제 모범생들의 대열에서 탈락한 ‘루저’의 슬픈 자화상을 본다.
김태훈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