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의 아베 정권’에 더 많은 가리야 필요 김수영은 ‘눈’에서 시인들에게 기침을 하자고 노래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김용출 도쿄특파원 |
1988년 이후 호주 시드니에 사는 가리야는 연재만화 ‘맛의 달인’을 통해 일본을 뒤흔들고 있다. 쇼가쿠칸(小學館)의 주간지 ‘빅코믹스피리츠’에 ‘후쿠시마(福島)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붙인 연재에서 2011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을 둘러싼 불편한 주장을 펼치고 있어서다.
가리야는 지난달 28일자 연재분에서 후쿠시마 원전 근처 마을을 방문한 주인공 일행이 코피를 흘리는 장면을 싣더니, 12일자엔 당시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雙葉町) 촌장이 “후쿠시마에서 코피 흘리는 사람이 많은 것은 피폭 때문”이라며 “후쿠시마에서 살아선 안 된다”고 말하는 장면까지 실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기일 것이다.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나 원전 재가동으로 더 많은 이윤을 챙기려는 전력회사, 사고를 조용히 매듭지으려는 지방자치체에겐 말이다. 이들이 연일 발끈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언론을 앞세운 정부와 기업의 여론몰이에 그의 주장이 잠시 꺾일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빅코믹스피리츠’ 편집장은 19일자에 “많은 분을 불쾌하게 한 것에 대해 편집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의 ‘편집부 견해’를 실을 예정이라고 한다. 가리야의 주장을 게재한 경위와 함께 반론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가 아닌 그의 주장이 얼마나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경험과 주위 증언 등을 바탕으로 시대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자세는 인상적이다. “난 진실밖에 그릴 게 없다”는 블로그 글은 가슴에 박힌다.
문제적 작가 가리야 데쓰. 1941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패전 후 일본에 돌아와 도쿄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결핵에 시달리며 의사를 꿈꾸다가 도쿄대학병원 건물의 침침한 분위기에 질려 지망을 바꿔 도쿄대 기초과학과에 입학했다. 1972년 고단샤(講談社)의 ‘주간소년 매거진’에 경륜을 테마로 한 ‘외톨이 린’의 연재로 데뷔했고, 초기엔 남성용 잡지나 소년잡지 등에 반권력적 내용을 담은 극화를 주로 그렸다.
가리야는 1983년부터 시작한 ‘맛의 달인’를 연재하면서 전기를 맞는다. 지금도 연재 중인 ‘맛의 달인’은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누적 1억권 이상이 팔렸고, 애니메이션과 게임, TV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인기에도 그는 기침을 계속했다. ‘맛의 달인’과 1990년대 후반부터 논단잡지 ‘주간 금요일’에 연재한 ‘만화 일본인과 천황’ 등을 통해 전후 보상 문제나 아시아정책, 근대 일본의 천황제 등 일본 사회의 금기에 돌직구를 던졌다. “일본을 나쁘게 하고 있다”는 우익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월호와 함께 푸른 생명 300여명을 진도 앞바다에 수장한 우리를 보며 가리야를 떠올린 건 왜인가. 아마 그건 안전을 내팽개치고 돈만 추구하는 기업의 탐욕에 적당히 타협해 안주하고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그럴듯한 냉소주의로 외면하며 우리가 기침을 멈췄기 때문 아니겠는가.
동아시아 패권을 노리고 주변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정권이나 집단자위권을 통해 ‘보통국가’로 내달리려는 일본 아베 정권에도 더 많은 ‘가리야’가 필요해 보인다. 김수영의 시는 이렇게 끝맺는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용출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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