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일전에 다른 연구자와 ‘청소년의 자해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부산 지역 여중생 491명의 자료를 분석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자해 경험이 있는 여중생이 20.98%(103명)였는데, 이 가운데 약 3분의 2는 자살의도가 없는 ‘비자살적 자해’에 해당되는 경우로 나타났다. 이러한 자해는 주로 스트레스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데,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해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이는 또래들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과 주목받고 싶은 마음의 복합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가 지나쳐 늘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에 집착하고 과장된 이미지가 심할 경우 거짓말을 동원해 타인에게 좋게 보이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자해 같은 극단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주목을 받으려는 것은 멈춰야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늘 남을 먼저 배려하려 애쓰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하는 예민한 사람을 만날 때가 많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넌 참 착해’,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자주 듣고, 이런 피드백이 좋아서 더 착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배려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함부로 대해 화가 나는데도 마음을 억누르다 보면 결국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은 왜 타인의 인정을 갈구할까. 이들의 공통점은 마음의 중심추가 항상 타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는 이를 ‘자기 가치의 조건’이라고 부른다. 로저스에 의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느낄 때 행복하고, 자신의 가치가 타인의 평가에 따라 심하게 달라지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지 못하고 늘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착하면서 타인의 인정을 갈구한다.
이를테면,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예뻐하다가도 성적이 떨어지면 바로 차갑게 변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우리 부모는 내가 100점 맞아야만 날 사랑해’라는 조건화된 신념을 갖게 된다. ‘잘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날 싫어할 거야’라는 두려움이 커지면서 시험불안과 과민성대장증상을 달고 산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행복하지 않고 늘 불안하다. 즉 다른 이에게 어떻게 비치는가에 집착하면서 진정한 나를 잊어버린 채 사는 삶은 마치 공회전하면서 기름만 태우는 자동차와 같다. 자동차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힘차게 달려야 한다.
나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물론 다른 사람의 반응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유익한 부분은 잘 받아들여서 발전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타인의 부정적인 반응이 내 마음을 온통 헤집고 잔상이 오래 남아 나를 불편하게 한다면 나의 가치가 타인의 손에 매달려 있는 상태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로 질문을 바꾸어 보자.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는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자.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것보다 우선돼야 한다. 결국 해답은 밖이 아닌 내 안에 있다.
이동귀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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