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결단, 피해자 설득 필요하고
“과거사 직시하면서 미래를 지향”
‘윤석열·기시다 선언’에 담아야
1998년 10월8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장에 선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 동경 납치 사건 당시 도와준 일본 정부, 국민에 대한 감사로 연설을 시작했다. 납치 사건과 같은 고행을 겪고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한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민주화의 기적이라고 했다. 전후 일본 의회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기여한 일본 국민의 땀과 눈물도 평가했다. 그의 연설은 일본 정치권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표현을 연설문에 넣은 것으로 알려진 최상룡 고려대 명예교수는 일본 학자들과의 대담에서 “외교는 상호인정의 실천”이라고 했다.
연설에 앞서 김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25년 만에 주목을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가 최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면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발전적 계승 원칙을 밝히면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축사를 비롯해 여러 차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정신을 강조했다. 공동선언 핵심은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오부치 총리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양국 미래 협력 사업이었다.
공동선언 성사에는 물론 두 지도자의 성향, 리더십 영향이 컸다. 과거사에 사죄한 오부치 시대와 우익화한 현재 일본 지도자 세대는 분명 다르다. 윤 대통령의 상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문재인정부에서 뒤집어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사자다. 납치 사건을 비롯해 굴곡이 깊은 정치 이력의 DJ와 검사 출신 윤 대통령의 무게감을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국 관계 개선에 관심을 가져온 정치인, 관료, 학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공동선언 원칙 복귀가 시작점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렁이는 양국 관계에 일종의 ‘가드레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양국 관계 개선의 당위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동의 안보 위협인 북한 미사일, 핵 전력은 더 고도화됐다. 국제외교안보 전략상 한·미·일 공동 대응 전선을 꾀하는 미국의 압력 또한 강해졌다. 무엇보다 양국 간 경제적 실리 회복이 절실하다. 김 전 대통령이 대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IMF 외환위기가 있었다. 일본 국회 연설에서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에 투자할 것을 호소했다. 실제 김대중정부에서 일본의 대한국 투자는 1998년 5억달러에서 2002년 14억400만달러 규모로 늘었다. 윤석열정부가 ‘대통령의 결단’을 강조하며 한·일관계 정상화에 나선 데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 등 복합 경제위기를 뚫을 지렛대가 필요해서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는 전임 정부가 손도 못 댔을 정도로 뜨거운 감자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대통령 결단은 평가할 만하다. 시민단체 논리로 무장해 정부 책임, 외교 영역을 방기한 문재인정부와는 달라야 한다. 하지만 일방의 결단만으로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 김대중정부는 방일 수개월 전부터 외교, 정보라인을 동원해 양국 관계 개선에 관한 여론을 수집했고 각계 관계자들은 물론 일본 언론인들까지 청와대로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TK(대구·경북)의 대부’로 불린 신현확 전 총리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김대중정부 내내 각을 세웠던 이회창 야당 총재가 이례적으로 방일 성과를 높게 평가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사전 정지 작업 끝에 거둔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DJ 연설문대로 한·일관계가 하루아침에 ‘기적적으로’ 나아질 리 없다. 전임 정부 시절 ‘죽창가’와 같은 대안 없는 반일몰이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건 그나마 다행이다. 배상 피해자들에 대한 설득은 여전히 대통령과 정부 몫으로 남아 있다. 미래 지향적 관계, 젊은 세대의 우호·친선은 일본의 과거사 사과를 디딤돌 삼아 쌓아올릴 수 있다. 이것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이다. 이번 주 윤 대통령 방일 기간 중에 나올 ‘윤석열·기시다 선언’에서 기시다 총리가 화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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