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2시30분 무렵 서울의 한 특수학교 교문 앞에 도착했다. ‘말뿐인 공용어… 설 곳 없는 한국수어(手語)’ 기획을 준비하며,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인터뷰하러 나선 길이었다. 약속까지 15분여 남아 교문 건너편 새하얀 벽에 기대 잠시 숨을 돌렸다. 때마침 하교시간 교문 밖으로 걸어나오는 학생들을 짧은 시간이나마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의 눈과 손을 바라보고 수어로 대화를 나눴다. 여중생 두 명이 수어로 대화를 나누다 유머 코드가 겹쳤는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 가방에 달린 키링 인형들이 함께 대롱거렸다. 한 초등학생 남자 아이는 자신을 데리러 온 어머니에게 부지런히 수어로 말을 걸었다. 오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주는 모양인지 어머니는 “그래서 기분이 어땠어? 좋았어?”라며 맞장구로 화답했다. 평화로운 보통의 하굣길 풍경이었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자 요새 가장 인기있는 걸그룹 ‘뉴진스’의 상징 ‘토끼’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었다. 애정하는 아이돌 사진을 여기저기 붙이던 학창시절 친구들이 떠올랐다. 이날의 인터뷰이 김수아·오은아양은 모두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두 이름은 학생들이 직접 고른 가명이다. 청력이 일부 남아 보청기를 낀 수아양과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은아양은 천천히 질문을 건네면 입모양을 보거나 작게 들리는 음성을 포착해 답변을 들려줬다. 우린 인터뷰 중 종소리가 울리면 잠시 대화를 멈추고 다시 고요해지길 기다렸고, 함께 온 선생님은 중간중간 수어통역을 지원했다. 아이들을 알아가면서 대화의 템포가 조정됐다.
인터뷰는 특수학교에 온 이유와 전학 이후 변화된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수아양과 은아양 모두 특수학교에 오면서 이전과 달리 자신감이 생겼고,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환경이 편안하고 즐겁다고 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수아양은 책상 앞에 둔 거울을 연신 흘낏대며 앞머리를 가다듬었다. 외모에 한참 관심 많은 영락없는 열아홉 살 소녀였다. MBTI(성격유형검사)가 ESTP라는 은아양은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수아양을 놀리는 은아양의 모습도 장난기 많은 또래 학생의 전형이었다.
교문을 나서며 인터뷰에 함께 간 기자와 ‘일반학교’와 특수학교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일반학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마다 무언가 말문이 턱턱 막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일반’이란 ‘특별하지 아니하고 평범한 수준 또는 그런 사람들’인데, 이날 마주한 학생들이야말로 너무도 특별하지 않고 평범해서였다. 일반학교의 무엇이 그리 유달리 ‘일반적’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만난 코다(농인의 청인 자녀) 이다빈(20)씨가 이에 대한 해답을 던졌다. 이씨는 “부모님이 나를 돌봐주시고 사랑해주는 만큼 나도 당연히 부모님을 종종 돕는데, 사람들은 내게 ‘착한 일 하네’라고 말한다”며 “자신들과 다르다고 특별하게 보는 시선이 장애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장애인들의 장애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일반’과 ‘특수’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있었다. 하지만 장애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할수록 그 경계선은 분명 점점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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