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로들이 극한 대결로 치닫는 현 정치상황을 바로잡는 데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의힘 신영균, 더불어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이 주축이 된 원로회가 제75회 제헌절인 오는 17일 공식 출범한다. 원로회에는 두 상임고문 외에 강창희 김원기 김형오 문희상 박희태 임채정 정세균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8명의 전직 국회수장과 정대철 대한민국 헌정회장까지 총 11명이 함께한다. 여야를 막론한 전직 국회의장이 같은 뜻으로 모임을 결성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달 30일 사전 모임을 가진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정치 분열상에 대해 큰 우려와 쓴소리를 쏟아냈다. 한국 정치가 너무 극단적으로 나뉘어 사실상 정서적 내전 상태를 겪고 있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이들은 월 최소 1회 모임을 정례화하고, 회의에서 모인 의견은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전직 의장 8명과 여야의 최고령 원로, 헌정회장이 다시 정치 현실에 목소리를 내겠다며 세운 원칙은 ‘서로 다른 걸 인정하자’다. 한자로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영어로는 ‘agree to disagree’다. 원로들의 목소리는 승자 독식과 극단적인 진영 충돌이 초래한 한국 사회와 정치 현실에 대한 비명으로 들린다.
한국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대화와 타협은 실종된 지 오래됐다. 경제와 안보는 어찌 되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되고, 정부·여당은 그런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돼 왔다. “쿠데타를 통해서 대통령이 됐다”, “반국가세력”이라는 극단적 발언이 난무한다. 최근에도 여야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서울∼양평 고속도로 변경 문제 등을 놓고 막말을 남발하며 사활을 건 대치를 벌이고 있다. 오죽하면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한국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비단 원로들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맹목적 지지층만 바라보지 말고 민생과 국익을 챙기는 정치를 해 달라는 게 민심이다. 여권은 국정에서 성과를 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야당이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고 끈기를 갖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과반 의석에 기대 정부·여당 발목 잡기만 했다가는 무책임한 정치세력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절실하다. “정치 복원”을 호소하는 11인 원로모임이 정치권 협치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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