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의 힘은 삼성을 넘어 KBO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역대 최고의 불펜 투수로 꼽히는 오승환(42)도 피해가지 못했다.
2024 KBO리그 정규시즌에서 2위를 차지해 플레이오프(PO)에 직행해 있는 삼성은 13일부터 시작되는 PO에서 오승환을 마운드에 세우지 않는다. PO 엔트리는 1차전이 열리기 전날인 12일에 발표해도 되지만, 오승환을 비롯해 코너 시볼드(28)의 엔트리 제외를 일찌감치 발표했다.
설마 했지만, 오승환의 엔트리 제외가 현실화됐다. 단국대 졸업 후 2005년 KBO리그에 데뷔해 그 시즌부터 리그 최강의 불펜으로 군림한 오승환이다. 일본과 미국 진출을 빼면 KBO리그에서 14시즌을 뛰며 무려 427세이브를 쌓은 전설이다. 일본 한신 타이거즈(80세이브)와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42세이브)에서도 마무리로 활약했던 선수다. 한미일 세이브를 합치면 547세이브로 더욱 늘어난다. 그가 승리를 매조지한 경기가 547경기나 된다는 얘기다.
1982년생으로 어느덧 한국 나이로는 마흔 셋이 됐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로 올 시즌 중반까지는 세이브 부문 1위를 달렸던 오승환은 결국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시즌 초반에 너무 달렸던 게 아쉽게 느껴진다. 삼성은 시즌 초반 유독 접전 양상이 많이 나왔고, 그만큼 세이브를 쌓을 기회도 많았다. 오승환은 6월까지 무려 35경기에 등판했다. 그때까진 겨우내 쌓아놓은 체력이 짱짱했기에 1승4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2.48로 다시 한 번 오승환의 클래스를 입증하는 듯 했지만, 폭염이 기승을 부린 7월 이후엔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7월 이후의 오승환 성적은 2승5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은 무려 9.64에 달한다.
전성기 시절의 돌직구가 무뎌진 상황에서 오승환은 포심 구사 비율을 대폭 줄이고, 슬라이더와 포크볼 비율을 대폭 늘이며 기교파 투구로 변신했지만 타자들을 이겨내기 버거웠다.
삼성이 정규리그 2위를 확정한 지난달 22일 대구 키움전의 난타가 두고두고 아쉽게 느껴진다. 9-2로 크게 앞선 9회에 등판한 오승환은 2아웃까지 잘 잡았다. 그리고 2사 후 김태진에게 중전 안타를 맞은 뒤 이주형도 평범한 1루 땅볼을 유도해 경기를 끝내는 듯 했다. 그러나 1루수 디아즈가 이를 가랑이 사이로 빠뜨렸고, 이후 오승환은 볼넷을 내준 뒤 연속으로 적시타를 허용했다. 그리고 김건희에게 3점 홈런까지 허용하며 순식간에 스코어는 9-8이 됐다. 결국 삼성 벤치는 오승환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마무리 김재윤을 투입해 1점 차 리드를 지켜내며 정규시즌 2위를 확정지었다. 오승환은 이날 6실점했지만, 모두 비자책 처리됐다. 디아즈의 실책이 없었다면 그대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승환은 그 경기를 끝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이후 오승환은 2군에서 시간을 보내며 구위 회복에 주력했다. 최근 퓨처스리그 2경기에 등판해 1이닝씩 소화해 무실점을 기록했다. 구위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플레이오프 엔트리 승선 가능성도 높이는 듯 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물론 이대로 끝은 아니다. 삼성이 플레이오프를 통과해 한국시리즈에 오르게 되면 엔트리 재승선의 가능성은 남아있다. 박 감독도 “한국시리즈에 간다면 구위를 체크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환에게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이 있다. 특히 한국시리즈만 6번이나 치러본 선수다. 한국시리즈에서만 22경기에 등판해 33.1이닝 동안 단 3실점만 했다. 평균자책점은 0.81로 0점대에 11세이브를 올렸다. 물론 이 기록들이 전성기 시절에 올린 것이라 지금도 저 기록을 재현해내긴 힘들고, 보직도 마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승환의 경험은 삼성 불펜진에서도 꼭 필요한 요소다.
KIA가 기다리고 있는 한국시리즈는 21일부터 시작된다. 보름이 좀 되지 않는 시간이 남아있다. 오승환이 플레이오프 엔트리 탈락이라는 충격을 딛고 구위 회복에 전념하며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오승환과 코너 시볼드가 없는 삼성 마운드가 플레이오프를 성공적으로 치러야만 한다. 과연 오승환의 올 가을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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