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에 포함하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국가안보와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 정책적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한다. 이스라엘과 인도 등 우방도 있지만,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이란, 시리아 등 미국의 적성국이 대부분이다. 명단에 오르면 미 에너지부의 원자력,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기술의 연구협력과 기술공유 등이 제한된다. 민감국가 목록 최하위 범주라곤 해도 우리에겐 심대한 타격이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미 에너지부가 어떤 이유로 한국을 이 리스트에 추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민감국가에 포함된 지난 1월 초는 한국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혼란이 고조됐던 시점으로, 미국이 ‘지역 불안정’ 등의 이유로 지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내에서 핵무장 여론이 고조된 것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그렇더라도 우리 정부가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된 지 두 달여가 지나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더구나 지난 10일 민감국가 목록에 한국이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정부는 “확인 중”이라고만 밝혔다. 정부가 안일했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조치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내려졌다는 점이다. 윤석열정부의 가치외교를 지지하며, 북핵에 맞서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워싱턴선언’까지 채택했던 바이든 행정부였다. 그런데도 미국은 사전예고나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다. 그동안 정부는 탄핵 정국에서도 “한미동맹은 변함없다”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발신하지 않았나. 양국의 핵심 협력 분야에서 미국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탄핵 정국 속 한·미 간 소통도 실패했다는 말이다.
다음 달 15일 정식 발효가 되면 지정에 따른 영향을 받게 된다. 지정 원인과 파장을 파악해 효력 발생 이전에 민감국가 지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와중에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까지 취임 후 첫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 일정에서 한국을 ‘패싱’했다고 한다. 로이드 오스틴 전 장관에 이어 연속 패싱이다. 이 또한 불안정한 국내 상황을 고려한 결정으로 이해되기는 하나, 한미동맹의 이상징후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서둘러 국방장관을 임명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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