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m급 11개등정…女산악인 대표주자
![]() |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가 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에 성공적으로 오른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상명대학교 제공 |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뒤 하산 도중 실종된 여성 산악인 고미영(41)씨가 숨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가족과 산악인들은 망연자실했다. 현지 구조진행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던 후원사인 코오롱스포츠 직원들도 허탈한 모습이었다. 산악인들은 “그토록 산에 미치고 좋아하던 고씨가 결국 산의 품에서 잠든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사망 가능성 높아=산악인들은 고씨가 조난당한 지점이 구조대원들도 접근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들어 생존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사고가 난 구간을 이전에 두차례 다녀 왔다는 산악인 엄홍길(49)씨는“이 곳은 눈과 암석이 뒤섞인 경사가 매우 가파른 지역이다. 고씨가 떨어진 곳은 빙하지역일 가능성이 크다. 구조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취재한 KBS의 영상 자료에 따르면 고씨는 발이 산 정상 쪽, 머리는 아래 쪽으로 향한 채 미동없이 누워 있었다.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코오롱스포츠 과천본사 6층에는 김영수 전무를 본부장으로 한 구조대책본부는 휴일이지만 직원 50여명이 비상근무하며 고씨의 무사귀환을 고대했다가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허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대책본부는 특히 파키스탄 스카루드에서 출발한 구조헬기 2대가 현지시각 오전 10시30분(한국시각 오후 1시30분) 베이스캠프에 도착, 본격적인 수색에 들어가자 30분 단위로 현지 상황을 체크하며 실낱같은 낭보를 기대했다. 대책본부는 현지 코오롱스포츠챌린지팀, 고씨와 등반경쟁을 벌였던 오은선 대장의 블랙야크팀, 현지 대행사인 유라시아트랙 등에 계속 연락하고 있으나 현지사정으로 위성전화가 원활하지 않아 발을 구르기도 했다.

◆고미영은 누구=‘늦깎이 산악인’ 고미영씨는 오은선(43·블랙야크)과 함께 국내 여성 산악인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이 둘은 여성 산악인으로 히말라야 8000m급 14봉 세계 첫 등정이라는 기록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고미영과 오은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8000m급 봉우리 각각 11개와 12개에 올라 관심을 모았다. 고미영은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뒤 “남은 3개 봉도 안전하게 등정해 대한민국 여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치겠다”며 14좌 등정에 강한 의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녀가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인천 인성여고를 졸업한 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암벽에 입문, 등산학교 암벽반에 나가면서부터다.
1991년 코오롱 등산학교로 산악에 입문한 고씨는 1m60에 48㎏으로 체구가 자그마하지만 고산 등반에 도전하기 전에는 국내 여성 스포츠클라이밍의 1인자로 활약했다. 스포츠클라이밍 매력에 빠지면서 당시 68㎏이나 나갔던 체중이 20㎏이나 줄었다. 2남4녀 중 막내인 고씨는 청주대 중문과를 졸업한 뒤 현재 상명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2006년부터 고산 등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2006년 10월 히말라야 초오유(8201m) 등정에 성공하고 나서 2007년 5월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정복했다. 같은해 국내 여성 산악인 최초로 8000m급 봉우리 3개를 연속 등정하는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에는 해발 8163m의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무산소 등정했다. 고씨는 14좌 등정에 도전하려고 지난 겨울부터 체력훈련, 감압텐트 트레이닝 등 강도 높게 훈련했다.
◆가족 및 주변 표정=전북 부안에서 농사를 짓는 고씨의 아버지(84)는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곧바로 상경했다. 고씨의 가족과 여성산악인 등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다가 12일 밤늦게 숨진 것으로 전해지자 말문을 잇지 못했다. 고씨의 언니 미란(48)씨는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믿기지 않지만 현지에서 직접 확인했다니 생사는 확실한 것 아니겠느냐”며 울먹였다.
고씨의 고향인 전북 부안군 하서면 청호마을에 있는 하서제일교회 윤경숙(54·여) 목사는 “사망소식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며 눈물을 훔쳤다. 고씨의 당숙 성문(70)씨는 “지극한 효녀 미영이가 이번에 돌아오면 마을사람이 한데 모여 등반을 축하하는 큰 잔치를 열려고 했는데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문준식·이귀전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