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잠수함 등 비정규전 대비책 마련 필요
작전·보고 등 안보시스템도 수술 불가피 천안함 침몰 원인이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이라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는 그동안 세 차례 교전이 빚어졌던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우리 군의 경계태세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이후 북한이 수차례 걸쳐 보복성 발언으로 도발을 예고해 온 점을 감안하면 사전에 이를 인지하지 못한 군의 위기대응 능력과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셈이다.
◆군 작전개념 수정 불가피=우리 군은 그동안 NLL 등 접적지역에서 북한과의 확전을 예방한다는 취지에서 과도한 자극은 가급적 피하는 ‘수비형’ 작전 개념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수비형 작전 개념으로는 더 이상 천안함 침몰과 같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도발시 즉각 응징, 보복하는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1999년과 2002년 제1, 2 연평해전에서 보여준 우리 해군의 대응은 수비형 작전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제1 연평해전 때는 NLL을 월선한 북 경비정을 선체로 밀어내는 작전에 치중하다 기습공격을 받았고, 제2 연평해전에서는 차단기동을 위해 다가갔다가 선제 집중포화에 당했다. 두 차례 교전에서 얻은 교훈으로 그나마 대청해전에서는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NLL 교전규칙을 종전 5단계(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에서 3단계(경고방송→경고사격→격파사격)로 줄인 덕분이었다.
이에 따라 군 내부에선 또다시 현행 3단계인 교전규칙을 ‘경고사격→격파사격’의 2단계로 단순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물론 천안함은 북 잠수함이나 잠수정이 쏜 어뢰에 격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북한의 NLL 침범에 공세적 자세를 취해 도발 의지를 꺾는다는 측면에선 나름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확전 가능성 등 더 큰 비극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3월 북한군에 해킹당했던 ‘작전계획 5027’도 다시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군 관계자는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한미연합사령부가 어떤 작전을 펼칠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작계 5027은 일부가 다시 손질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러나 주한미군이 북한 정권의 붕괴 등 돌발사태에 대비해 세운 작계 5029는 그다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잠수함 등 ‘비대칭전력’ 대비책 마련도 시급=그동안 우리 군은 수심이 낮은 서해에선 북한 잠수함의 침투 및 기동이 쉽지 않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이런 사고는 북 서해함대의 수중전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결국 위협을 간과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합참은 대청해전 이후 북한 잠수함에 의한 기습공격을 예상하고, 수중공격을 가상 도발 시나리오 중 하나로 생각했지만 대비하지 못했다.
군은 지난주부터 해군의 단·중기 전력 보완 및 소요 조정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잠수함 등 수중무기체계 탐지를 기본으로 하는 해군 초계함이 구형 장비를 장착하다보니 사전에 잠수함 기동이나 어뢰 공격 등 위협 징후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뒤늦은 인식에서 비롯됐다.
작업은 우선 북한 잠수함을 탐지하는 음탐장비(소나)와 초계함의 레이더 성능 개선, 소해(기뢰 탐색 및 제거) 헬기인 MH-60 도입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잠수함이나 잠수정 침입이 예상되는 서해상 주요 거점에 ‘수중음파탐지 시스템(SOSUS)’을 설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여기에 군은 2020년까지 연구·개발하기로 한 3차원 레이더(차기 국지방공레이더)를 4년 앞당겨 개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군은 전면전을 상정하고 1980년대 수립한 ‘5-7 전쟁계획’으로는 남한과 승산이 없다고 보고 비대칭전력을 혼합한 새 작전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 시스템 대대적 수술 불가피=정부는 이번 사건의 원인 규명과는 별개로 군의 작전·보고·행정 시스템 전반을 아우르는 대대적인 정비를 예고했다. 제대로 된 위기대응태세를 갖추기 위한 전제조건이 신속하고 정확한 보고인데, 지금까지 드러난 군의 모습으로는 이러한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NSC 사무처는 참여정부 때 국가 위기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청와대에 신설된 상설조직이었으나 부처 자율성 훼손 등의 이유로 이명박정부 들어 폐지됐다. 군 내부 정보 공유와 협조 체제 강화로 위기에 대응하는 시스템 정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문제점을 낱낱이 밝혀 군 조직을 일신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박병진·나기천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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