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특유의 예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이번 앨범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알려주며 6집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즉시 사전을 찾아보고 비슷한 단어들을 공부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 아직은 한국어가 조금 서툰 탓이다.
# 요즘 트렌드 모르겠어
지난해 공연에서 ‘곧 6집으로 컴백하겠다’고 장담했던 박정현은 올 초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요즘 대중이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어떤 곡이 히트곡이 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것. 그는 ‘내가 구세대가 된건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굉장히 큰 일이 난 거잖아요. 제가 구세대가 된 건지, 아예 감을 못잡겠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요즘 애들 뭐 듣니?’라고 묻게 되고.(웃음) 2007년은 정말 어떤 게 트렌드고 어떤 게 통하는지 그런 공식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한가지 알 수 있었던 건 국내 대중이 발라드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차트에서 발라드 음악이 좋은 반응을 얻자 비슷한 노래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던 것. 박정현도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이 생겼다.
“사람들이 식상해 하니까, 저는 한번 들어도 기억에 남는 노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억지로 그렇게 만들려니까 노래가 안나오더라고요. 농담으로야 ‘이거! 컬러링에 좋겠다’ 이런 말 하지만, 실제로 앨범 만들 땐 그런 생각 안하게 되거든요.”
# 1집으로 돌아가자
그런 박정현에게 돌파구가 돼 준건 ‘1집 때가 제일 좋았다’는 주위의 반응이었다. 보통 인기가수들은 3∼4집을 거치면서 보다 자신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히게 마련. 박정현 역시 4집때부터 변신을 시작해서 5집 때는 록, 일레트로닉 등 매우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1집때가 제일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면 기분 나쁘지 않았을까.
“아니요. 저 나름대로는 발전해오고 있는 것 같은데 ‘1집 좋아요’ 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걸 무시해선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1집으로 최대한 돌아갔는데, 이번 수록곡 ‘마음이 먼저’는 정말 1집에 넣어도 자연스러울 곡이에요.”
황성제 프로듀서와의 독특한 작업방식도 보다 자연스러운 박정현을 보여주는데 일조했다. 아무 컨셉트 없이 그냥 마음대로 노래를 쭉 써보고 나중에 골라내는 것이다.
“효신씨랑 작업을 그렇게 해봤는데, 꽤 괜찮았대요. 저한테도 제의해주셔서 한번 해보자고 했죠. 사실 처음엔 3∼4곡 정도 예상했어요. 그런데 ‘이건 어때’ ‘저런 것도 괜찮다’하면서 만들다보니 나중엔 10곡이 넘는 거예요. 그냥 이걸 컨셉트로 가자고 했죠.(웃음) 사실 트렌드를 잘 모르겠으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최대한 길게 활동할래
박정현의 2008년 목표는 ‘6집으로 최대한 길게 활동하기’다. 앨범 준비에 1년이 걸렸는데 3개월짜리 활동으로 끝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그는 그 어떤 프로그램이든, 무대든, 가리지 않고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실 요즘 가수들이 방송에서 활약하기란 쉽지가 않다. 개그맨 만큼 웃겨야 하고, 행동이든 옷이든 튀어야 한다. 자신을 120% 오픈해야 가능한 활동인 셈.
“원래 저는 처음부터 많은 걸 오픈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제 원래 모습이 안나오더라고요. 이젠 많이 적응돼서 제 모습이 조금씩 나와요. 5집땐 노래가 안뜨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방송도 할 수 있는 거 다할 거예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일본활동을 위해 일본어를 배우면서 한국어가 늘었다. 한국어로 일본어를 배우다보니, 한국어가 더 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동안 동료가수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했던 것을 많이 아쉬워했다.
“가수들이 모여있으면 저는 부끄러워서 구석에서 책을 보고 있었어요. 문화 차이도 너무 커서 적응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러니 저도 모르게 벽을 만들었던 거죠. 이제부터는 많이 깨려고요.”
한국 생활 12년. 여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바로 운전이다. 드라이브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하는 그는 서울에서 운전하는 게 너무 무섭다며 깔깔 웃는다.
“즐겁게 운전 할 수 없어요. 목숨 걸고 해야되잖아요. ‘나 저기 도착해야 돼! 끼워주면 안돼!’ 하면서.(웃음)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죠.”
박정현은 이번 ‘장기간 활동’을 위해 후속곡들도 든든하게 준비해뒀다. 이번 타이틀곡 ‘눈물빛 글씨’이, 다음에는 ‘달아요’가, 이 곡 뒤에는 또 다른 후속곡이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2008년에는 유행, 트렌드를 초월한 ‘진짜’ 박정현의 롱런이 이어질 전망이다.
스포츠월드 글 이혜린 기자, 사진 허자경 객원기자 rinny@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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