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26일 1983년에 작성된 외교문서 1648권, 27만여쪽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83년에 발생한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소련의 대한항공(KAL)기 격추 사건을 비롯해 1980년대 초반 외교 비사 등이 담겨 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목록은 외교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원문은 외교부 외교사료관에서 열람·출력할 수 있다.
1983년 10월9일 발생한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을 놓고 그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버마에 갔느냐는 것이다. 버마는 당시까지 대통령을 물론 국무총리나 외무부 장관(현 외교부 장관)도 방문한 적이 없었던 한국 외교의 오지(奧地)였다. 그 이유를 놓고는 남북한 비동맹 외교전의 일환이라느니, 순방 일정상 버마를 경유하는 것이 편리해서라느니 등의 각종 설이 나왔다. 버마식 막후 통치술을 배워 퇴임 후를 대비하려 했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외교부가 26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버마 실력자로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네윈 버마사회주의계획당(BSPP) 당 의장을 만나려 한 정황이 여러 곳에서 확인됐다.
또 버마 방문 계획은 뒤늦게 추가됐다.
전 대통령이 83년 2월15일 서명한 2급 비밀 문서 ‘대통령각하 인도, 호주 및 뉴질랜드 방한’에는 방문국에 버마가 포함되지 않았다. 순방 암호명은 ‘국화(菊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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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테러 직전… 1983년 10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현 미얀마)의 실권자로 퇴임 이후에도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네윈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버마를 방문했음을 추정케 하는 외교 문서가 공개됐다. 사진은 전 전 대통령의 버마 순방 기간 발생한 아웅산 테러 직전 모습. 연합뉴스 |
회담 성사를 위해 우리 정부는 버마 외무장관을 통해 네윈에게 ‘전 대통령과 네윈 의장은 국제정치나 경제문제에 관하여 유사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취지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공개된 문건에는 그해 9월 작성된 ‘버마 권력 구조분석’이라는 보고서가 포함돼 있다. 버마의 당의장, 대통령 등 당 정부 요직은 모두 군 출신이 장악해 군 출신을 우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버마의 최고 권력기관인 당 중앙집행위와 실권자 네윈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당시 네윈은 칭병(稱病)하며 정상회담을 거부했으나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직후 전 대통령을 만나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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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26일 공개한 1983년 작성 외교문서들. 총 1648권, 27만여쪽이 공개됐다. 연합뉴스 |
당초 10월8일 오후로 예정됐던 전 대통령의 아웅산 묘소 방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참사가 발생한 10월9일 오전으로 변경된 것도 드러났다. 우리 정부가 전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이틀 앞둔 10월6일 북한 선박(애국동건호)이 버마 랑군항에 입항한 뒤 출항한 사실을 확인하고 주버마대사관에 상황 파악을 지시했고, 대사관은 다음 날 특이동향이 없다고 보고한 사실도 밝혀졌다. 그 선박에는 북한 테러범이 탑승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아웅산 테러 사건 이후 암호명 ‘늑대작전’으로 명명된 북한 고립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김정일 후계체제 공식화 직후인 1982년 북한에서 김일성·정일 부자세습에 반대하는 대규모 군사정변이 일어났으며, 정변 실패 이후 100여명이 중국으로 망명했다는 구 소련 외교관의 증언을 담은 내용도 공개됐다. 82년 당시 군사정변과 정변 가담자들의 망명 사태가 외교문서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외교관과 접촉한 주유엔 소련대표부 일등서기관은 북한 내부 정세와 관련해 “김정일 승계 기도에 반대한 군대 반란이 1982년 가을에 있었고 그 결과 군인들이 중국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미국 언론에서 보았는데, 내 생각으로는 그 반란이 꽤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청중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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