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비롯 대기업 공채 시작
예전 같으면 청년 취업 큰장 열려
SK 그룹차원 공채 올해가 마지막
LG·현대차그룹 수년전 이미 폐지
정부 “대기업 공채 늘려라” 주문
기업 “경영환경 바뀌는데…” 난색
이준호(31)씨는 5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대학 졸업 후 웬만한 기업은 이력서를 제출했으나 여전히 ‘취준생’이다. 취업 준비 초기에는 대기업을 지망했지만 이제는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췄다. 하지만 여전히 채용문만 두드리고 있다. 이씨는 “(올해도) 매일같이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직장을 찾고 있지만, 뽑는 곳이 갈수록 줄고 있는 데다 수시채용을 선호해 취업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하반기 대기업 채용 문턱이 코로나19가 불붙었던 지난해보다 더 높아질 전망이다.
대기업 채용 방식이 대대적으로 인력을 끌어모으는 공개채용에서 인재를 필요에 따라 수혈하는 수시채용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취직을 준비 중인 청년들의 취업 문은 더욱 좁아지게 됐다.
5일 재계 등에 따르면 삼성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하반기 공개채용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삼성그룹은 대부분의 계열사가 참여하는 공채형태로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하반기 공채는 이달 초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10월 필기시험, 11월 면접 등을 거쳐 신입사원을 연내에 최종 선발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대기업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공개채용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달 24일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청년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희망을 줄 수 있도록 공채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향후 3년간 4만명을 직접 채용할 계획이다.
SK그룹은 하반기에 주요 관계사들이 참여하는 마지막 그룹 공채를 진행한다. 이달 말 모집공고를 내고 9월 이후 필기·면접시험이 진행된다. SK그룹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내년부터는 계열사별로 필요 인력을 수시 채용할 계획이다.
SK그룹처럼 상당수 대기업들은 정기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불확실성이 커진 경제 상황과 빠른 시대 변화 속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시 채용이 불가피하다는 게 기업의 입장이다.
한경연 조사결과, 올해 대졸 신규채용에서 수시채용을 활용한 기업 비중은 63.6%로, 지난해(52.5%) 대비 11.1%포인트 증가했다. 이 중 수시채용만 진행한다는 기업이 24.0%였고, 공개채용과 수시채용을 병행한다는 기업이 39.6%였다. 공개채용만 진행하는 기업은 36.4%에 그쳤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했다. 올해 하반기 연구개발과 제조, 정보기술 등 미래차 신기술 분야 인력을 주로 채용한다.
LG그룹은 지난해부터 정기채용을 없애고 연중 상시채용으로 전환했다. 현재 LG그룹 계열사들은 채용연계형 인턴십 등을 통해 신입사원을 선발하고 있다. 올해부터 신입사원 채용방식을 전면 개편한 SKT는 이달 채용에 나선다. SKT는 기존 정기공채를 수시채용 방식의 ‘주니어 탤런트’와 통합해 실무형 인재 채용을 강화했다. 평가 방식도 기존 서류접수→필기→면접전형을 탈피했다.
이 같은 대기업들의 채용변화에 정부는 공개 채용을 주문하고 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30대 기업 인사노무담당 임원(CHO)을 만나 수시보다는 공개채용으로 청년을 채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와 같은 채용 방식으로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청년 채용 시장이 회복할 수 없다고 보고 직접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안 장관의 요청이 채용 시장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4대 그룹에 속한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채용의 근본적 목적은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다. 그때그때 필요한 분야에 즉각 투입할 인재를 뽑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면서 “경영 환경이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서 대규모 신입사원 모집은 경영 전략 측면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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