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산업 투자 환경 조성 시도
美·中 기술경쟁 틈새에 낀 한국
반도체법의 전략 이해 큰 도움
뒤늦게 알게 된 주목할 만한 글이 있다. 공화당 소속 토드 영 인디애나주 상원의원이 지난달 외교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에 기고한 ‘도널드 트럼프 2기를 위한 기술강국으로의 전략’이다.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최대 과제 중 하나가 된 오늘날 미국의 국가 전략 방향을 잘 제시한 글이어서 소개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생명공학, 양자컴퓨터 등 첨단기술이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안보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시대에 미·중 간 치열한 경쟁 속에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한국이 알아둬야 할 내용들이다.
글은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영 의원이 공동발의해 통과된 반도체과학법(반도체법)을 중심으로 ‘강력한 공세: 제조업과 혁신 활성화’, ‘강력한 방어: 기술 통제’, ‘특수팀: 새로운 외교관들’, ‘게임플랜: 미래를 조망하다’ 등 네 가지 챕터로 구성돼 있다. 반도체법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동맹국들과의 지속·적극적 소통을 통해 반도체 및 첨단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하며, 5억달러 규모의 국제기술안보혁신(ITSI) 기금을 활용해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는 내용을 항목별로 담고 있다.

특히 마지막 ‘게임플랜’ 부분엔 △반도체 외 AI, 생명공학 등 다양한 기술 분야에서 민주주의 가치와 기술 표준 확산 △외교관의 기술 이해도 향상 △미국의 AI기술과 해외 자본의 전략적 결합을 통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AI 지원 모델 구축 △미국 기술 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을 미국의 가치에 맞게 설정 등 미국의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는 행동지침이 자세히 나와 있다.
영 의원에 따르면 반도체법은 단순히 산업육성책이라기보다 미국의 국가적 과제인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종합적 국가전략서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에서 반도체법이 “끔찍하다(horrible)”고 하면서 폐지를 촉구하는데 공화당 의원들 자리에서 환호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하면 미국의 패권이 유지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 의원의 글에서 읽은 몇 가지 키워드는 한국에도 시사점이 크다. 먼저 미국 기술·외교정책의 초당성이다. 이 글은 도입부에서 전임 행정부의 과도한 해외 개입을 비판한 부분을 빼면 민주당 의원이 썼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외교정책과 큰 줄기에서 다른 점이 없다. 중국과의 기술 경쟁이 미국의 지상과제가 된 상황에서 당파성을 드러내기도 어렵다. 한국도 미국의 기술·외교정책은 이제 이런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수출통제 및 공급망 정책에서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둘째는 과학·기술 투자와 관련 산업 환경 조성의 중요성이다. 영 의원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기술 투자를 강조하지만 중견국 한국의 생존전략에도 기술 우위는 중요하다. 미 언론, 정치권·싱크탱크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는 상황에서 반도체·조선업이 없으면 한국이 미국에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미·중 간 첨단기술 경쟁이 이처럼 뜨거운데 한국에 반도체라는 ‘전략무기’가 없었다면 이 판에 낄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더 그렇다. 한 대만인 친구가 “TSMC가 없었으면 미국이 (양안 경쟁에서) 우리를 버렸을 것 같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 위기 보도가 나올 때마다 우려스러운 이유다.
영 의원이 제안한 외교관의 기술 이해도 향상도 중요한 포인트다. 바이든 행정부의 상무부 산업안보차관보였던 앨런 에스테베스는 산업안보국(BIS)을 이끌며 미 수출통제 정책의 초석을 세우다시피 했는데 그 전에는 36년간 국방부에서 일한 인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한국에도 많은 외교관 혹은 관련 공무원들이 새 분야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외교에 적응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부딪쳐 가며 했지만 더 체계적으로 외교관의 기술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면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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