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를 나누는 중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대화 행태와 특성에 대한 과학적인 국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보편성을 지닌 수치나 결과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체험적으로 느끼는 일이다. 말할 차례라 생각해 입을 여는데 다른 사람이 낚아채거나, 말하는 도중에 치고 들어와 말이 막히고 중단되고 입을 닫게 되는 건 불편하고 짜증 나는 일이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따르면 대화 상황에서 말하기와 듣기의 역할 교대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뜻이 잘 맞는다’는 기분을 가지게 된다. 반면에 말하기와 듣기의 순서 교대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특정인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가 반복되면 대화와 만남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과 좌절감이 발생하고, 말할 기회를 빼앗는 상대에 대해 무례하고 독단적이고 권위적이고 공격적이라고 평가한다(‘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최양호·민인철·김영기 역).
대화 차례(conversation turn-taking)는 자신이 말을 하고, 듣고, 양보한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밝히는 언어적 행위 못지않게 미묘한 비언어적 행위에 큰 영향을 받는다. 몸동작, 목소리의 고저, 말의 속도, 말을 잠깐 중지하는 시간의 길이, 눈의 움직임, 표정, 상대와 거리감 조절과 같은 다양한 비언어적 요소가 발언 요구, 발언 유지, 발언 양보, 발언 거부, 대화 중단과 같은 대화 행위에 개입한다.
대화 차례와 말하기와 듣기의 역할 교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쁜 결과가 발생한다. 차례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매력, 능력, 자존심, 리더십, 사회적 평가, 통제력, 권위와 관련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The management of conversion’, Cappella). 제 맘대로 제멋대로 말하는 행위는 도로에서 차선을 지키지 않고 난폭한 끼어들기를 하는 운전자와 다를 게 없다. 시비와 욕설과 같은 충돌은 물론이고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피해를 야기하는 교통사고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화에서 끼어들기를 자제하고 적절하게 차례를 지키는 것은 대화의 질과 만남의 질을 높이는 중요 요소이다. 대화는 인간의 일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대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고함을 치며 무례한 끼어들기가 습관이 된 대한민국 국회도 명심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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