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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만나 느끼는 고마움을 보여줄 수가 없다.” 1946년 영국 엘리자베스 공주와 사랑에 빠진 해군 중위 필립 마운트배튼이 보낸 연서의 내용이다. 내 앞에 나타나 줘서 고맙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둘은 처음부터 달달한 사이는 아니었다. 1939년 아버지 조지 6세와 함께 왕립해군학교를 방문한 열세 살 엘리자베스 공주는 안내를 맡은 훤칠한 사관생도 필립을 보고 반해 버렸다. 필립은 엘리자베스가 눈에 안 들어왔지만 끊임없는 구애 편지 공세에 마음을 열게 된다. 뒤늦게 불이 붙은 필립은 2차 세계대전 참전 중에도 “사랑에 빠지면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나 심지어 세상의 문제까지도 작고 하찮게 보인다”고 편지에 썼다. 펜팔로 시작한 엘리자베스 여왕과 남편 필립 공의 러브스토리다.

펜팔(pen-pal)은 편지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사귀고 교류하는 친구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다. 1960~80년대에 펜팔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랑의 가교’, ‘친교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주간지 뒷면은 ‘친구 구함’, ‘애인 구함’ 문구를 넣은 펜팔 광고로 도배됐다. 귀순용사 김신조씨도 펜팔로 반려자를 만났다. “귀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는 편지가 있었어요. 그렇게 한 5개월 정도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편지들을 읽을 때면 용기를 얻게 되고, 진실함이 느껴지더군요.” 김씨는 누구인지 궁금해 만남을 신청했고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1982년부터 11년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펜팔을 했다고 한다. 33세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편지 친구’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첫 편지에서 트럼프는 닉슨에게 “당신은 위대한 인물, 어젯밤 저녁을 함께 보내 영광이었다”고 적었다. 닉슨은 “앞으로 조언을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화답했다. 닉슨은 1987년 12월 당시 41세였던 트럼프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하는 듯한 편지를 썼다. “내 아내가 트럼프 당신이 ‘도나휴 쇼’(MSNBC의 토크쇼)에서 대단했다고 말했다. 출마 결심만 하면 당선될 것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트럼프는 이 편지를 액자에 넣어 트럼프타워 내 사무실에 전시했다고 한다. 펜팔이 트럼프의 대통령 꿈을 움트게 한 씨앗이 된 듯하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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