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눈앞의 적과 싸우면서 자신들의 머리 위도 경계해야 하는 나날을 약 3년째 보내고 있다. 하늘에서 소리 없이 다가와 지상 표적을 타격하는 무인기(드론) 위협 때문이다.
전쟁 초기에는 바이락타르 무인기처럼 별도의 무장을 갖춘 무인기가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작고 저렴하며 간편하게 운영할 수 있는 소형 자폭·정찰 드론이 전쟁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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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은 매달 드론 20만 대를 확보해 전선에 투입하고 있으며, 연간 400만대를 생산할 역량도 갖췄다. 그만큼 전쟁에서 드론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에 주목한 군 당국도 드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태세다. 드론 도입을 확대하면서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한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군, 드론 개발 로드맵 공개
국방부는 지난 1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업무보고에서 첨단 국방 전력 확보를 위한 방안을 일부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군 당국은 예전부터 진행했던 고성능 중·대형 드론 연구개발 사업을 지속하되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을 고려해 소모성 드론을 신속하게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연차별로 드론 도입을 확대해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고,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국내 산업계의 기술 축적·발전을 꾀한다.
새로운 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긴급소요 요건을 추가하고 관련 절차도 올해 말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무기체계 운용 중 파손에 따른 전력공백을 방지하고자 손실량을 보충하는데 필요한 획득절차도 12월까지 신설한다.
이같은 조치는 소형 드론의 운용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1인칭 시점(FPV) 드론을 비롯한 저가의 소형 드론이 대량으로 쓰인다.
전자전 안티 드론체계로 인해 임무에 실패하고 추락하는 드론도 많고, 드론이 타격해야 할 표적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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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드론을 빠르게 대량생산하고 파손된 드론을 신속하게 보충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드론 전력 확충 방안도 이같은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군 당국은 드론 도입 사업을 다수 추진중이다. 기존에 추진되던 사업에 더해 2023년 9월 드론작전사령부가 창설됐지만, 유사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드론은 크게 부족한 현실에서 드론 관련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선 유사시 적 이동표적을 직접 타격하는 중거리 자폭드론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략적·작전적 차원의 표적을 타격하는 드론을 국외구매 방식으로 확보하는 사업이다. 이스라엘산 하롭(HAROP)과 유사한 수준의 드론이 구매 대상이다.
하롭은 23㎏ 중량의 탄두를 탑재한 채 1000㎞를 비행해 지상 표적을 타격한다. 적 레이더 전파를 탐지해 지상 방공망을 공격할 수 있고, 광학 유도로도 공격이 가능하다.
중거리 자폭드론 사업은 다음달 제안서 평가를 진행하고 여름쯤에 구매시험평가와 협상을 실시, 올해 말에 기종을 결정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에는 전력화가 가능할 전망이다.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성하는 대량응징보복(KMPR) 중 일부인 특수임무여단이 사용할 특수작전용대물타격무인기 사업도 진행 중이다.
특수임무여단은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자폭 드론인 로템(Rotem)-L을 운용하고 있다.
로템-L은 프로펠러 4개가 달린 드론이다. 배낭에 담아 휴대하다가 띄운다.
무게 5.8㎏에 작전 거리는 10㎞이며 수류탄 2개 위력의 1.2㎏ 탄두를 탑재하면 30분, 감시정찰을 위해 띄우면 45분간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크기와 소음이 작고 목표물 1m 이내 정밀 타격이 가능해 요인 암살 등에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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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산 스위치블레이드를 비롯한 자폭드론으로 러시아군 전차와 자주포 등을 파괴하면서 기갑 차량을 부술 수 있는 자폭드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후방에서 전선으로 이동하는 적 전차를 자폭드론으로 직접 타격해 증원 효과를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을 보강하고자 특수작전용대물타격무인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으로 입찰공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다수의 드론이 동시에 움직이는 군집드론 블록(block)-Ⅰ 사업도 있다. 북한 무인기 침투 직후인 2023년 6월 중기소요 결정이 이뤄졌고, 다음달쯤 사업추진기본전략이 수립될 예정이다.
드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감안, 블록 개념을 도입해 신기술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군집드론은 평시에 적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하는 등의 도발을 하면 작전지역에 대한 정찰을 통해 무력시위를 하고, 전시에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표적 지역 상공으로 날아가 정밀타격하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소모성 드론 개발과 더불어 KF-21 전투기에 적용할 유·무인복합체계의 일부로서 운용될 저피탐 다목적 무인편대기, 공군 중고도무인정찰기(UAV)를 토대로 개발되어 지상작전사령부급 부대에서 쓰일 것으로 보이는 대형무인항공기-Ⅰ형 등도 개발이 추진될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선 기술 발전 추세를 감안해 드론 관련 소요를 수정하고 유사한 사업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거리 정찰드론 1대와 다수의 소형 자폭드론을 한데 묶어서 탐지와 타격작전을 펼치거나, 중거리 자폭드론을 플랫폼을 삼아서 소형 자폭드론을 통제한다면 드론 작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실무자들이 기존에 정해진 소요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소요를 바꿀 수 있도록 군 당국이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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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엔진 개발도 추진
방위사업청은 유·무인 항공무기체계 기술 선진화를 위해 다양한 유형의 항공엔진을 만들 예정이다.
특히 무인기에 탑재할 수 있는 터보팬 엔진 개발에 초점이 맞춰지는 모양새다. 현재 개발이 진행중인 무인기들에 쓰일 수요가 있고, 무인기 탑재 엔진을 제작한 경험을 토대로 기술을 발전시키면 전투기용 엔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형 무인기에 탑재될 5500파운드힘(lbf) 수준의 엔진 개발은 2027년에 이뤄진다. 대형무인기에 사용할 1만lbf급 엔진은 올해 개발에 착수한다. 차세대 전투기용 1만6000lbf급 엔진은 올해 상반기 중 사업타당성 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방위사업청이 엔진 개발에 나선 것은 향후 등장할 신형 무인기와 전투기 운영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 직수입에 의존하면 엔진 제조국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무인기와 전투기 운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선진국에서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무인기 엔진은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등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된다. 자체 개발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렵다.
국내에서 추진 중인 엔진 개발은 무인기와 전투기 엔진 기술을 연계시킨 형태로 이뤄진다.
저피탐 무인항공기 등에 사용할 5500lbf급 터보팬 엔진을 만든 뒤, 이를 토대로 스텔스 무인기에 쓸 1만lbf급 엔진을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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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는 5500lbf급 엔진의 코어 부분을 확보한 뒤 엔진 블레이드의 내열 성능을 높이고 냉각 기능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기술 성숙도를 높이면서 리스크를 낮추게 된다.
무인기용 엔진 개발이 이뤄지면, 1만6000lbf급 국산 항공엔진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본적 기술과 인프라를 확보하게 된다.
항공엔진을 개발하려면 팬과 압축기, 연소기, 터빈, 소재 기술이 필수다. 여기에 감항인증과 지상 및 공중 연소시험 등에 필요한 시험 인프라를 갖춰야 엔진의 성능을 확인하고 전력화를 추진할 수 있다.
무인기 엔진 개발을 통해 기술과 인프라를 구축한 뒤 해외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국산 첨단 항공엔진을 만든다는 것이 군 당국의 구상이다. 개발 기간은 10년, 비용은 5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대형 국방연구개발 사업이다.
전투기용 국산 첨단 항공엔진 개발에 대해 일각에선 우려도 나온다. 1만6000lbf급 엔진은 KF-21 전투기에 탑재되는 엔진과 유사한 수준이다.
문제는 국산 엔진을 탑재할 플랫폼이다. 엔진 개발이 완료될 시점은 이르면 2030년대 말로 예상된다.
KF-21 개발 종료 이후 KF-21보다 우수한 국산 전투기를 새롭게 제작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스텔스 성능을 높인 KF-21 블록Ⅲ나 전자전기 등이 거론되나, 실제 전력화가 여부는 불투명하다. 무인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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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을 개발했지만, 탑재할 플랫폼이 없다면 기술을 유지·발전시키기가 쉽지 않다. 공군의 전투기 전력 증강 및 국내 항공우주산업 발전 전략 등과 연계해서 엔진 사용처를 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해외 업체와의 협력도 변수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려면, 선진국 업체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항공기 엔진 시장에도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항공 엔진 기술을 지닌 나라는 미국(GE, P&W), 프랑스(사프란), 영국(롤스로이스)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항공엔진을 만들었다. 어렵게 만든 엔진의 기술에 대한 공동개발 및 기술이전은 극히 제한된다.
지식재산권과 정부의 수출승인 문제도 걸려있다. 협력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대목이다. 업계 외에도 범정부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 전쟁’이라 할 정도로 드론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 세계 각국 군대는 전쟁에서 드론을 더 많이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데 힘을 쏟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신형 무인기를 개발하는 상황에서 드론을 대량으로 운용하는 것은 전투의 승패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요소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의 드론 수요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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