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 조기 대선을 바라보는 차기 대선주자들의 움직임도 연일 분주해지고 있다.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다 처음 한글을 알게된 평균 연령 80세 곡성 할머니들이 나오는 ‘시인 할매’(2019),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시각장애여성을 그린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2020) 등 휴먼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어온 이종은(53) 감독은 이 ‘정치 과잉’의 시대에 의외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들고 나왔다. 이달 초 사실상의 출마선언을 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다. 다음달 13일 개봉하는 영화 ‘준스톤: 이어 원’은 국민의힘 당대표에서 축출된 그가 2023년 5월 전남 순천에서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활동부터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경기 화성을에 출마해 당선되기까지 꼭 1년간의 여정을 담았다. “이준석 위인전, 평전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고 말하는 이 감독을 지난 6일 서울 금천구 제이리미디어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감독과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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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로로 성사된 프로젝트인가.
“이준석이 2023년 낸 책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기획한 이가 이 영화 프로듀서의 지인이 다. 최연소 여당 대표를 지낸 그가 당에서 쫓겨나 야인 생활을 하던 때 이 책을 보고 이 인물이 궁금해졌다. 하버드를 나와 36세에 당 대표로 선출됐고, 누구보다 빠르게 정점을 찍은 사람이 갑자기 백수가 됐는데, 불과 1년후 총선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간 국회의원에 여러번 도전을 했는데 떨어진 적 있으니 다음 총선이 이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 될 것 같았다. 그가 인생의 저점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궁금해 그 1년을 찍고 싶었다. 이전까지 이준석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정치 고관여층도 아니다. 출판사를 통해 (이준석의) 의향을 물었는데, 위인전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는 점은 명확히 밝혔다. ‘재미있겠는데요’라고 하더라고 연락이 왔다. 2023년 3월의 일이다. 그 달 북콘서트에서 처음 실물을 봤다. ‘앞으로 좀 따라다닐게요’ 정도의 얘기를 했다. 그 해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에서 첫 촬영을 했고, 다음해 4·10 총선일이 마지막이었다.”
—처음 기획 단계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이 정도의 정치적 입지를 가진 30대 정치인이 자기 당에서 축출되는 사건이 또 벌어질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이준석의 정치 여정에서 이 1년이 너무 중요할 거라 생각했고, 그러니 ‘놓치지 말고 찍자’에 방점을 뒀다. 이준석이 총선에서 당선되느냐 낙선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출마를 할지, 공천은 받을지, 어느 지역에 나갈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대단히 재미있는 1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다큐멘터리는 10년씩 촬영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총선까지 딱 1년으로 시점을 못박고 시작하니 부담이 덜했다. 또 처음부터 극장 개봉을 염두에 뒀다. 만약 이 의원이 낙선했다 해도 영화를 완성해 극장에 걸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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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든 아니든, 개봉 시점이 조기대선 정국 한복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12·3 계엄사태’ 직전에 영화를 완성했다. 계엄이 터지고는 ‘망했다’ 싶었다. 너무 큰 사건이라 한동안 (개봉) 포기 상태에 있다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후 평정심을 찾고 배급사를 찾아다녔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테이블에 올려야 가장 맛있는 것처럼, 완성된 가능한 빨리 선보이는 게 낫겠다고 해서 잡힌 개봉일자다. 배급사를 못 찾았다면 그냥 하드드라이브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많은 관객은 ‘이준석 팬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치우친 메시지를 담은 영화일 것’이라고 짐작할텐데.
“관객의 관점에 대해 옳다 그르다 얘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앵글이나 영상미를 아예 신경을 안 썼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카메라에 정확하게 잘 담는걸 목표로 했다. 그렇다고 인물에게서 뜻밖의 좋은 모습을 봤다면 그걸 구태여 버리지는 않았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지만, 그가 ‘아이들이 먹는 것만 봐도 마음이 흐뭇하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멘트가 제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부분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다.”
—천하람 의원이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인터뷰이 선정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일텐데.
“천 의원뿐 아니라 (유튜브 채널) 여의도재건축조합 스태프들의 인터뷰도 들어가있다. 다만 처음부터 이준석 평전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 1년의 기록을 중심에 뒀기 때문에 불필요한 인터뷰는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아쉽게 영화에 못 담은 장면이 있다면.
“역동적인 선거운동 장면을 촬영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자제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캠프로부터) 들었다. 촬영을 하긴 했지만, 후보와 밀착해서 찍지는 못했다. 원치 않는다고 하는데 달라붙을 수는 없었다. 사실 1년간 개인적으로 이준석을 따라다녔으니 당연히 이 인물이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인지상정이다. 마치 사수생 수험생 자녀를 보는 느낌이었다. 무리하게 촬영을 하다가 유권자와 해프닝이 일어난다거나 해서 데미지를 줄까 봐 조심스럽고 부담감이 있었다.”
—가까이서, 또 멀리서 본 이준석은 어떤 사람인가.
“흔히들 그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싸가지 없다’는 건데, 최소한 제작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촬영을 가면 반갑게 맞아주고, 물어보면 묻는대로 잘 답하고 예의있게 촬영팀을 대했다. 그렇다고 해서 먼저 다가와서 안부를 묻거나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런걸로 봐서는 살가운 스타일은 아닌 것 같고, 뭘 해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또 이 사람이 힘든 시기를 보낼거라고 짐작해서 따라붙은 건데, 의외로 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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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현역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흔하지 않다.
“정치인을 다룬 국내 다큐멘터리는 많지만, 수많은 업적을 이미 이루고 일선에서 물러났거나 서거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미국 다큐멘터리 ‘미트 롬니, 그의 대선 출마 이야기’에서 롬니의 대선 레이스를 계속 따라다니며 찍는 드라이한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강의석 감독의) ‘애국청년 변희재’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앞으로도 여러 감독들이 가진 관점과 개성을 바탕으로 한 현역 정치인에 대한 다큐는 많이 나오면 좋겠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면모를 보며 재평가할 기회가 되지 않겠나”
—정치인 개인 유튜브 채널처럼 ‘띄우기’로 흐르지 않을까.
“목적이 띄워주기인 것과, 촬영을 해봤더니 의외의 긍정적 모습이 보이는 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마 다큐멘터리스트라고 하면 일부러 인물을 영웅화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준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가 어떤 선택을 하며 1년의 시간을 보낼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거지, 정해진 답을 보여주려던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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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점에 이준석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를 선보인다는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관객의 몫이다. 영화가 이준석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떤 관객은 ‘싸가지가 없네’라고 할 거고, 어떤 사람은 ‘당당하네’라고 할 거다. 다만 나 역시 이준석 의원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부분에서 이견이 있다. 인터뷰할 때 그런 부분에 대해 여러 차례 되묻기도 했다. 저에게는 출연자, 주인공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란다. (‘시인 할매’의) 할머니들이 건강하시기를 바라고,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의) 재한씨가 더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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