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동북아 주변국들은 거침없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 실전배치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이미 수천∼1만㎞에 달하는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적 수준의 우주 로켓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탄도미사일을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한국과 미국 내에서 “이제는 한국도 억지력 보유 차원에서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어 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지난해부터 시작한 미사일 지침 개정 2차 협상이 조만간 가시적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대북 미사일 억지력 보유는 순리
한·미 미사일 지침은 양국 간 민감한 안보 현안이다. 한국은 1979년 미국과 미사일 지침에 합의한 뒤에도 줄기차게 사거리 연장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미사일 군축’이라는 원칙하에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미국이 한국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동의한 것은 2001년 단 한번이었다. 당시 남북한 탄도미사일 능력은 명백하게 불균형 상태였다. 북한은 사거리 1300㎞에 이르러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노동’ 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었다. 1998년 발사된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가로질러 약 2500㎞를 날아갔다. 이 같은 미사일 전력 열세를 시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한·미 양국은 미사일 지침을 개정해 사거리를 150㎞에서 300㎞로 늘렸다. 그러나 탄두 중량은 여전히 500㎏으로 제한됐다.
한·미는 현재 2차 개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양국 정상회담이나 안보 관련 각료급 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단골 의제다. 지난 3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사거리 연장을 은근히 압박했다. 지난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협상은) 상당한 진전을 이룬 상태”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 내에선 미사일 지침 개정에 대한 낙관론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새로운 미사일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협의하고 있는데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양국이 상당 부분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밝혔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최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 내 분위기에 대해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관한) 우리의 논리가 타당하고 미국 쪽에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로선 한·미 양국이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대로 연장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억지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남쪽에서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탄도미사일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려면 최소 800㎞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노동 미사일 공격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도나 남해안 지역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해 대응 발사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거리가 800㎞라는 설명이다.
국방부가 지난 4월 공개한 사거리 300㎞의 신형 탄도미사일 ‘현무-2’. 현무-2는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탄두 중량이 500㎏으로 제한돼 있다. 국방부 제공 |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이 동북아 안보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우려의 가장 큰 배경은 중국이다. 사거리를 800㎞로 연장하면 중국의 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가 사정권에 들어가게 돼 중국이 반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 의회 내에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를 550㎞로 묶어두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도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일본도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가 1000㎞대로 확대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일본 중심부를 사정권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일본 입장에서 한국 탄도미사일이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이 같은 일본의 입장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우리는 일본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우려를 표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보유한 군사강국들이 사거리 몇백㎞ 미사일 개발이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중국은 1965년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의 지시로 고체연료 탄도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중국은 1980년대 후반에 이미 한반도와 일본을 사정권에 두는 DF(둥펑)-21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 때 탄도미사일 개발에 나섰고 이때 얻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1970년에 위성을 쏘아올릴 정도의 우주 로켓 기술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다. 일본의 우주 로켓은 미국의 최상급 ICBM에 맞먹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미사일 지침의 족쇄만 풀리면 한국이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 미사일 전문가는 “한국은 30년 넘게 미사일 개발을 해왔기 때문에 사거리를 늘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국내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도 뒷받침되기 때문에 수년 내 필요한 만큼 사거리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두원기자 flyhig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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