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잘 안 하면 손해배상 판결
독일은 ‘의료행위는 인체에 대한 침해로서 불법행위’라는 전제를 가지고 문제에 접근한다. 환자 승낙이 있어야만 의료행위가 정당화되고, 승낙이 유효하려면 의사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 1894년 보호자 동의 없이 유아의 발을 절단한 의사에게 상해죄를 적용한 판결이 지금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환자의 자기결정권보다는 의사의 재량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환자들이 의사의 의료행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를 거치면서 의사는 환자가 자발적인 동의를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독일, 미국, 일본의 경우 설명 의무를 위반하면 그 자체를 불법행위로 보고 전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오스트리아의 경우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치료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말했다.
◆선언과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
1970년대 이후 환자권리에 대한 국제선언들이 만들어졌다. 이 중 여러 정부에 영향을 끼친 것이 유럽의 환자권리증진에 대한 선언이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작성돼 1994년 암스테르담 회의에서 채택됐다.
선언에는 환자는 자신의 건강상태와 그에 관련된 의학적 사실, 의료시술에 대해 잠재된 위험과 이득에 대해 충분히 알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진단, 예후, 치료과정뿐 아니라 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생길 효과까지 포함된다. 정보를 전달할 때는 기술적 용어들을 최소화해 환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환자가 정보를 거부할 권리도 규정하고 있다. 또한 환자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의학적 중재도 이뤄질 수 없다는 내용도 자세히 담겨 있다.
아예 법에 이를 규정한 나라도 많다. 특히 핀란드, 네덜란드, 이스라엘, 그리스, 헝가리, 덴마크, 벨기에, 프랑스 등은 다른 법에 몇 줄 포함된 수준이 아니라 환자권리에 관한 독립적인 법을 가지고 있다.
윤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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