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동결 전제의 주한미군 철수론과 미·중 빅딜론이 당장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북한을 핵 보유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핵 동결이 아닌 비핵화가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방침이 언제까지 고수될지 알 수 없는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공동으로 언론기고문을 싣고 “미 정부는 북한과 협상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상황이다.
‘북핵 용인론’은 미국 내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북한의 미국령 괌 미사일 포위사격 협박 이후 심해졌다.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북한에 가서 보니 비핵화는 애초에 고려할 가치가 없는 생각”이라며 “미국은 북핵을 받아들이고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냉전시대 소련 핵무기 수천 기를 용인했던 것처럼 북한 핵무기를 용인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핵동결 협상론은 중국이 원유공급을 차단하지 않는 한 핵개발을 막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한계에서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누구도 한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 언론은 이 언급을 미국에 대한 경고라고 해석한다. 대북 빅딜론이 나오는 국면에서 한·미 동맹을 금 가게 해선 국가안보를 해치게 된다. 미·일 동맹은 탄탄해지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편에 서고 있다. 내용과 구도가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운전대를 한국이 잡아야 한다는 단선적인 사고로는 한반도 안보의 고차방정식을 풀 수 없다.
북핵 인정을 전제로 한 빅딜론은 한국 안보엔 치명적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기는커녕 북한이 북핵 게임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핵 동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체결은 김정은의 노림수다. 정부는 대북정책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레드라인을 넘은 북한에 단호하게 경고하고 독자적인 대화론은 유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이 소외된 채 빅딜론이 현실화되면 한반도 운명은 벼랑 앞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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