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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심야영업 계약이 족쇄… 적자에도 문 여는 '편의점 푸어'

입력 : 2018-03-26 19:57:50 수정 : 2018-03-28 1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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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업계 ‘출점경쟁’… 수익성 악화에 점주들 생계 위협 / 점포간 거리제한 무력화 제 살 깎아먹기 / 일시 지원금 등 미끼 출점동의서 요구 / “거부해도 다른 브랜드 들어오면 끝나 / 지원금이나 받으면 그나마 다행” 분통 / 본사들, 최저수입액 보장액 기준 인상 / 전기요금 지원 등 상생 방안 내놨지만 / 가맹점과 수익 배분구조 개선은 손놔 / "책임은 점주 몫… 본사는 열매만 먹어"
“새벽에 담배 몇 갑 팔아서 인건비가 남겠어요. 본사 때문에 문 닫고 싶어도 못 닫습니다.”

편의점을 6년째 운영한 점주 A씨에게 ‘심야영업 단축’은 그림의 떡이다. 가맹사업법에 따라 6개월 이상 심야시간대(오전 1∼6시)에 영업 손실이 발생하면 점주는 심야영업을 중단할 수 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A씨의 편의점은 심야 매출이 시간당 평균 1만원을 넘지 않는다. 1시간 동안 손님이 아예 오지 않는 경우도 잦다. 그러나 A씨는 편의점 문을 닫지 못한다.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인건비를 줄이려고 지난해 말 본사에 심야영업 단축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지원금 축소였다.

A씨는 “한 달에 본사에서 받는 전기료, 수수료, 재고 폐기 지원금이 줄어들면 심야영업 중단으로 적자를 줄여도 의미가 없다”며 “재계약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심야영업 단축을 강하게 요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편의점 본사는 심야영업을 조건으로 본사와 점주의 배분율을 조정하거나 전기료 지원을 약정하는 ‘당근’을 제시하고, 매출장려금 환수라는 ‘채찍’으로 점주들의 24시간 영업을 강요한다.

편의점 시장의 과포화와 편의점 본사와 점주의 왜곡된 수익구조가 편의점 점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편의점 본사가 공격적인 영업으로 점포 수를 4만개까지 확대하면서 매출액을 3배 가까이 끌어올릴 동안 편의점 점포당 매출은 1.2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심야영업 단축과 영업지역 보장 등 가맹거래법에서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편의점 점포당 영업이익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CU와 GS25는 최근 점주의 최소 수입 보장액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본사와 점주가 35대 65로 나눠 갖는 수익 배분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26일 통계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편의점 4개 업체(CU·GS25·세븐일레븐·미니스톱)의 연평균 매출액은 2007년 1조3196억원에서 2015년 3조6488억원으로 2.8배 증가했다. 매출액은 매년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늘었다. 반면 4개 업체의 가맹점주 연평균 매출액은 같은 기간 4억8218만원에서 등락을 반복한 끝에 5억9054만원으로 1.2배 느는 데 그쳤다.

최저임금이 2007년 3480원에서 2015년 5580원으로 1.6배 오른 영향 등으로 점포당 연간 평균 영업이익은 2014년 2억2400만원에서 2015년 1억8600만원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소비 패턴이 달라지면서 연간 편의점 시장이 20조원 규모로 커졌지만, 성장의 과실은 대부분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로 돌아갔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점주의 몫은 줄고 본사만 수익을 가져가는 가맹사업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해 수수료를 포함한 수익배분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편의점 시장은 퇴직자들이 퇴직금을 붓고 3~5년 버티다가 망하는 ‘자영업자의 무덤’이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서울 중구 다동에서 영업 중인 편의점 점포 .
◆가맹거래법 준수 요원… 4명 중 1명은 영업지역 내 출점 동의서 강요받아

2013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편의점 점주들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심야 자율 영업과 계약 시 영업지역을 설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가맹거래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전체 점포 중 심야에 문을 닫는 점포는 3%도 되지 않고 250m 내 동종 브랜드 출점을 막는 영업지역 설정을 무너뜨리는 출점 동의서 요구 관행은 여전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부터 석달간 편의점 점주 951명을 대상으로 방문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21명(23.2%)은 본인의 영업지역 내 같은 브랜드의 직영점·가맹점이 출점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가맹본부로부터 동의서를 요구받아 작성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8.3%이었다. 동의서를 작성한 이유로는 가맹본부와 관계 유지(52.3%), 가맹본부의 영업지원 약속(26.5%)을 가장 많이 꼽았다.

도심 중심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의 매장 근처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같은 브랜드 편의점이 문을 열었다. 3년 사이 B씨의 매장 반경 500m 내에 편의점 3곳이 오픈했다. 

부산 한 지붕 두 편의점… 결국 1층 폐점 지난해 8월 2일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한 건물 1, 2층에 편의점이 나란히 들어선 모습. 2층 GS25 편의점 점주의 반발과 근접 출점 논란에 1층에 새로 들어온 세븐일레븐 편의점은 결국 문을 닫았다.
부산=연합뉴스
계약서에 보장하는 영업지역(도보 250m 거리)과 관련해 본사는 “일시 지원금이나 다른 혜택을 제공하겠다”며 B씨에게 출점 동의서 작성을 요구했다. B씨는 “설령 출점 동의서에 서명을 안 하더라도 그 자리에는 다른 브랜드 편의점이 들어오면 서명을 거부한 의미가 없다. 지원금이라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며 “제 살 깎아 먹기 출점 경쟁이 결국 기존 편의점 점주들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토로했다.

편의점 급증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편의점 점포당 매출 증가율이 11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매달 15%가량 웃돌던 월별 전체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2월을 기점으로 10% 초반대로 떨어지면서 점포 수 증가율(13∼15%)보다 낮아졌다.

심야영업 단축의 경우 도입한 지 5년째를 맞이했지만 실제로 심야에 문을 닫는 점포는 전체의 3%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관계자는 “전체 점포 중 특수영업지역을 제외하면 3% 정도만 심야 단축 운영을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기준으로 본다면 3만5282개 편의점 중 1058개만이 심야 시간에 문을 닫고, 나머지 3만4224개는 영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에 따르면 편의점 점주 10명 중 6명은 영업 손실과 근무자 확보 어려움 등을 이유로 심야영업 중단을 희망했다.

낮은 심야영업 중단 점포 비율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요건에 맞춰 점주들이 신청하면 본사는 수용해야 하지만 신청 건수 자체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심야영업 단축 기준이 되는 영업손실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고 시간대를 조정하는 내용 등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 적용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상생협력 확산을 위한 가맹업계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19개 가맹본부 대표·사장 등이 참여해 본부와 가맹점주간 상생 방안을 논의했다. 뉴스1
◆“책임은 점주, 과실은 본사”… 본사·점포 수익 배분구조 개선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

지난 16일 공정위와 프랜차이즈 가맹협회, 19개 가맹본부 대표는 ‘상생협력 확산을 위한 가맹본부 간담회’를 갖고 상생방안을 발표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거 미국에서도 (본사가) 가맹본부의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다가 가맹점의 서비스 질 하락으로 가맹본부의 경영위기를 초래했다”며 “가맹시장 혁신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주체는 바로 가맹점주이고, 점주와 본사의 상생협력이 가맹사업 성공의 절대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CU와 GS25는 이날 최저수입액 보장금액 기준 인상을, 세븐일레븐과 미니스톱은 전기요금 지원 방안을 공개했다. 공정위의 압박 속에 편의점 업계의 영업이익이 감소와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사와 점주의 수익배분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은 담지 않았다. 편의점 점주 C씨는 “책임은 언제나 점주 몫이고 본사는 열매만 따 먹는다”며 “최저임금·임차료가 올라 여론이 안 좋아지면 지원금을 찔끔 주면서 생색내기에 바쁘다”고 꼬집었다.

길 가맹거래소의 정종열 가맹거래사는 “업계의 상생 노력은 환영하지만 점주와 본사의 수익배분 비율을 65대 35에서 75대 25 정도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가맹거래사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이 점주에게 몰리니 오히려 ‘을’인 점주와 아르바이트생끼리 갈등하고 있다”며 “점주와 본사가 함께 수익과 손해를 공유하는 수익공동체가 되도록 수익 배분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獨, 일요일 휴점 법제화… 日, 24시간 영업은 ‘옛말’

편의점의 24시간 영업은 당연할까. 유럽 일부 국가들은 노동자 건강과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편의점을 포함한 상점의 일요일과 공휴일 운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편의점 왕국’이라는 일본에서는 지난해부터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24시간 영업을 포기한 점포가 처음 등장했다.

지난해 서울시의 의뢰로 ‘해외 유통업 프랜차이즈 및 편의점 현황’ 실태를 조사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인권의 관점에서 ‘365일 24시간 의무영업’이라는 편의점 가맹업계 관행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26일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일주일에 평균 65.7시간을 일하는 한국의 편의점 점주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따지면 1년에 3416시간을 일하고 있다”며 “이는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멕시코의 2255시간(2016년 기준)보다 1.5배 더 많이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태웅 서울시 경제진흥본부장은 “휴일, 심야영업은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영업환경을 악화할 수 있다”며 “편의점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와 근로자의 휴식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의점=24시간 영업’이라는 상식을 만든 일본에서는 지난해 비용 문제로 일부 편의점이 심야에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훼미리마트’는 심야에 매출이 낮은 일부 매장을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문을 닫는 식으로 영업시간을 줄였다. 점포당 인구가 1996년 4006명에서 20년 만에 2096명으로 감소하면서 편의점 시장의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은 관광수요 등을 이유로 편의점 규제가 다소 완화하고 있지만 일요일 정기휴무는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독일은 영업시간제한법으로 일요일·공휴일 휴점을 못 박아 강력한 일요일 정기휴무를 보장하고 있다. 빵집만 오전 5시30분부터 영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나머지 점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영업을 할 수 있다.

프랑스는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고자 노동 관련 법령을 통해 모든 소매점의 일요일 영업을 규제하고 있다. 국제관광지구와 상업지구 등 예외지구에 속한 상점들은 2015년 통과된 ‘경제적 기회의 평등과 경제활동 및 성장을 위한 법’(일명 마크롱법)에 따라 일요일 영업이 가능하다.

영국은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사이 대형점포(280㎡를 초과)의 영업시간을 6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일요일거래법’을 제외하면 상점의 주중·일요일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 단, 일요일의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는 반드시 휴점하도록 명시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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