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세계문학상 주인공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응모한 ‘다이앤 쇼어’였다. 그동안 해외에서 보내온 세계문학상 응모작들은 끊이지 않았지만 수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사위원들이 지난 24일 저녁 긴 토론 끝에 당선작을 선정했을 때 밴쿠버는 한국보다 하루 늦은 새벽이었다. 곤히 자고 있을 시간이라 연락을 바란다는 간단한 메일만 먼저 보냈는데 이튿날 아침 걸려온 전화 속 여성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높은 톤이었다.
한국 이름은 이봉주, 서울대 독문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일을 같이 하면서 박사과정 1학기까지 수료했는데 이 과정에서 심신이 지쳐 휴식을 취하러 캐나다에 갔다가 운명의 이란 출신 남자를 만나 결혼해 아홉 살짜리 딸이랑 남편과 밴쿠버에서 살고 있다. 블로그에 에세이는 써왔지만 소설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한 건 연전에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들’ 서문을 읽으면서였다.
밴쿠버에 살면서 캐나다 이름 ‘다이앤 쇼어’로 15회 세계문학상에 응모한 이봉주씨. 그는 “이 소설이 세상에 나간다면 제가 낫고 있듯이 누군가도 치유되기를 바란다”면서 “단지 그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이봉주 제공 |
수상작 ‘로야’에는 그가 겪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성장기에 아빠의 폭력과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캐릭터로 인해 깊숙이 잠복된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치밀한 문장으로 그려진다. ‘로야’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딸 이름인데 페르시아어로 ‘꿈’ 혹은 ‘이상’을 뜻한다. 아무리 주어진 ‘원 가족’에서 고통을 겪고 성장했어도 부모 세대보다 진화된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인류의 삶에는 희망이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캐나다 노벨문학문상 수상작가인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고루고루 늘 읽는 편이고, 여름엔 하루키의 작품을 영문으로 읽는다. 그는 ‘후끈한 여름에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차가운 수영장에서 고른 호흡으로 수영을 하고 나온 느낌이거나 깨끗하게 빨아 잘 개어놓은 세탁물을 보는 느낌’이어서 ‘읽다 보면 34도의 기온이 24도쯤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블로그에 쓴 적 있다. 영어는 물론 독어 페르시아어에도 능통한 그는 다른 언어로 바뀌어도 내용에는 손상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한국 작가들 작품은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제한돼 있어 목마른 편인데 이청준, 박완서, 은희경의 글과 생각들을 좋아한다.
“‘로야’가 겉으로는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누구에게나 연관된 보편적인 글입니다. 언어를 초월해도, 문화나 관습을 초월해도, 종국엔 경계를 초월해도 이해 가능한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습니다. 이 글이 세상에 나간다면 제가 낫고 있듯이 누군가도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다이앤 쇼어, 이봉주는 “아파도 괜찮다고,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한다고, 특히 자신에게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순간 나을 수도 있고 낫지 않더라도 적어도 더 이상 아프지는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이 소설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1974년 대구 출생
△1999년 서울대 독문과 대학원 석사
△캐나다 밴쿠버 거주
△1999년 서울대 독문과 대학원 석사
△캐나다 밴쿠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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