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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청와대·헌법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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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2 23:00:03 수정 : 2025-02-12 2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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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사태로 ‘靑=험지’설 힘 잃자
이번에 공연히 헌법에 책임 돌려
개헌보단 선거구 개편이 더 시급
공존정치 축적 위해 다당제 필요

청와대가 억울한 누명을 벗은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가져온 예기치 않은 성과다.

청와대, 정확히는 청와대 터는 풍수상 좋지 않다는 흉지설(凶地說)에 시달렸다. 일제가 이곳에 조선총독 관사를 설치한 1939년 이래 조선총독, 대한민국 대통령 하나같이 암살, 하야, 탄핵, 체포·수감의 비운을 겪거나 적어도 가족·측근 비리에 휘말렸다. 지기(地氣)가 나쁘다는 풍설에 얼마나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였나. 윤석열 대통령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할 때 반대보다 기대가 컸던 이유다. 국가와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12·3 사태에 봉착해서야 한국 정치의 근원적 문제는 땅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면서 청와대(터)는 죄가 없음이 드러났다.

김청중 논설위원

청와대(터)는 무죄방면됐으나 또 다른 억울한 죄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다. 계엄 사태의 피해자, 헌법이 가해자로 둔갑해 개헌론이 고개 들었다. 5년 단임제의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분산을 위해선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내각책임제로 개헌이 필요하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윤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계엄의 발동 요건과 절차를 무참히 짓밟는 위헌·위법 혐의로 탄핵심판대에 섰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헌법’ 때문이 아니라 국헌과 국법을 유린한 인간들의 행위가 사태의 원인이다. 헌법 탓은 본말전도다.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내각책임제 운운은 한국적 상황을 고민한 것인가.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헌정사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는 결국 3선 개헌으로 이어져 독재로 가는 길의 문을 열었다.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 독재가 그 과정이다. 두 사람의 비극적 말로를 우리는 안다. 21세기 민주선진국에서 군부정권 때나 보던 전국비상계엄을 목도한 뒤론 장차 역사 재연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작금의 슬픈 현실이다.

1987년 항쟁과 여야 대타협의 산물인 우리 헌법은 이미 내각책임제 요소,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의 절충인 이원집정부제 요소를 고루 갖췄다.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권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곤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죄는 헌법이 아니라 헌법정신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승자독식의 대결주의가 깊게 뿌리내린 우리 사회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관용을 대부분 상실했다. 진영 대립 속에서 여야, 좌우, 보혁 모두 상대를 인정 않고 타협 못 하는 비참한 정치는 그 연장선에 있다. 결국 대통령제든, 이원집정부제든, 내각책임제든 큰 차이가 없다. 공존과 공생을 지향하는 인간의 자세와 행동의 부재 때문이다.

개헌론에 앞서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최장 집권 8년의 대통령 윤석열 또는 이재명을 인정할 수 있나. 이원집정부제에선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정부의 출범이 가능한데 대통령 윤석열·총리 이재명, 반대로 대통령 이재명·총리 윤석열의 협치는 가능한가. 내각책임제에선 대통령은 허수아비고, 총리·다수당 독주는 삼권분립의 대통령제를 초월할 수 있는데 ‘제왕적 총리’ 윤석열 또는 이재명을 감당할 수 있나.

윤석열과 이재명이 상징하는 두 세력의 양자 극한대립에 대안 없이 헌법을 바꿔보겠다는 것은 결국 땅을 바꿔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풍수공학’처럼 ‘개헌공학’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거대 양당의 대립 완화와 공존·공생 정치의 단련과 축적 차원에선 개헌보단 선거법 개정이 절실하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고 비례대표제를 본래 뜻에 맞도록 확대·강화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는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존립기반이다. 다당제를 추동하는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중도주의, 제3의 정치세력이 국회에서 확대되면 양자 대립의 폐해가 축소되고, 그 결과 타협과 절충 정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적지 않다. 결국 관건은 거대 양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다. 조기대선 예상 시점에서 나라 걱정보단 당리당략 매몰 행보를 거듭하는 이들이 기득권 포기의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청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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