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벌이·군사기술 이전 다 잡아
대미 협상용 핵실험 감행 등 예상
韓, 美와 더 긴밀한 공조 갖춰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24시간 내에 끝나지 않았다. 물론 정전 또는 휴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러시아도 전쟁을 종결하려면 쿠르스크를 탈환해야 한다. 여기가 러시아의 정치적 승리를 완성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국토의 약 20%를 점령해도 자국 영토를 빼앗긴 이상 러시아의 수호자라는 푸틴의 위상은 위태롭다. 독재자가 정체성에 손상을 입는 건 커다란 정치적 패배다.
쿠르스크에서 치열한 전투가 지속되면서 북한의 도움은 더욱 절실하다. 쿠르스크를 탈환하려면 절대적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돌격제대의 존재가 필수이다. 러시아는 공수부대와 해군보병으로 돌격대를 구성해 왔지만 몇몇 부대는 10차례나 해체와 재창설을 반복할 정도로 희생이 컸다. 종전을 위해 러시아는 더 많은 돌격제대를 투입하려 한다. 북한이 제공하는 경보병 전력은 돌격제대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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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 될수록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러시아에게 청구할 금액과 함께 높아진다. 북한은 계속되는 무기수출과 추가파병으로 외화벌이와 함께 그간 절실했던 신무기와 핵·미사일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 이미 파병 1진이 궤멸되었지만 북한은 불과 한 달도 안 돼 기존의 두 배에 이르는 추가병력을 보냈다. 전쟁이 지속되는 한 북한은 피의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을 보낼 것이다.
이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만 가지고도 미국과 협상할 수 있다. 북한군 철군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공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애초에 러시아와 북한이 모두 북한군 파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쿠르스크 탈환이 푸틴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탈환의 주체가 외세인 북한이 되어선 안 된다. 그래서 더더욱 북한이 받아야 할 대가는 커진다.
자신감에 찬 북한은 트럼프 정부와 또 다른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일부 언론의 관측과 달리 미·북 정상회담이 곧바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북한처럼 미국의 우선순위도 우크라이나 전쟁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종결짓고 중동 상황을 정리해도 파나마운하나 그린란드 등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는 일이 남아 있다. 트럼프 1기와는 달리 2기에서 북한의 우선순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렇다면 북한의 선택지는 명백하다. 우선순위를 높이는 일이다. 최근 김정은은 군 창건일 연설에서 미국이 ‘세계의 평화와 안정의 파괴자’라면서 핵을 포함한 모든 억제력을 강화할 새로운 계획사업을 선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즉 최근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미국을 향해 핵무기 개발의 가속으로 답한 것이다. 북한은 7차 핵실험을 포함한 다양한 신무기 개발로 한반도의 긴장을 높여 자신의 우선순위를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협상의도도 엿보인다. 김정은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한·미 연합연습,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등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콕 집어 언급하며, 이 세 가지가 미국과의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 또는 협상 대상임을 암시했다. 한편 김정은은 대남비난을 생략하며 한국은 패싱, 트럼프 개인에 대한 비난은 삼가면서 협상을 위한 여지를 남겨 놓았다. 비핵화와 핵전력 강화라는 두 명제를 놓고 양측이 치열하게 맞부딪혀야만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다. 거친 행보가 예상되는 북한에 대응하여 한·미동맹은 더욱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앞으로 향후 4년간 정책 세부를 수립하는 향후 수개월간이 중요하다. 최근 트럼프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첫 정상회담 후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만나, 트럼프 2기에서도 일본이 인·태전략의 핵심파트너임을 과시했다. 대행체제 리더십의 한계를 한탄만 하지 말고 우리도 당장 행동에 나설 때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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