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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돌아왔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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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15 14:04:46 수정 : 2025-03-15 14: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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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매번 ‘전범’으로 몰렸다. 1차대전의 경우 오늘날에는 ‘딱히 독일만의 잘못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반면 2차대전은 모든 책임이 나치 독일과 그 지도자였던 아돌프 히틀러에게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2차대전 기간 3대 연합국인 미국·영국·소련(현 러시아) 정상이 모여 전후 세계 질서를 의논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안건이 바로 ‘독일 분할’이다. 독일은 그냥 두면 너무나 위험한 나라이므로 여럿으로 쪼개야 한다는 뜻이다. 패전 직후 독일이 미국·영국·소련·프랑스 4대 전승국의 점령지로 나뉜 것이 분할의 단초였다. 그 뒤 미국·영국·프랑스 점령지가 합쳐져 서독, 소련 점령지는 그대로 동독이 되며 분단이 현실화했다. 1990년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독일은 국제사회에서 ‘2개의 국가’로 존재했다.

 

사진 / 북유럽 리투아니아의 국경일 기념 열병식에 참여한 독일 육군 부대가 국기를 앞세운 채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독일은 나토 동맹국인 리투아니아 방어를 위해 2024년 4월부터 리투아니아에 독일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1945년 패전 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독일은 군대가 없었다. 2차대전 때 독일군의 침략과 점령을 생생히 경험한 이웃나라들이 독일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지며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 간 냉전은 극에 달했다. 소련에 의한 서유럽의 공산화를 두려워 한 미국, 영국 등 서방 주요국들 사이에 ‘독일의 재무장’ 필요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2차대전을 거치며 세계 최강의 전사임을 입증한 독일군이 재건돼 자유 진영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결국 1955년 서독과 동독이 나란히 주권을 되찾아 독립국이 되면서 둘 다 군대를 갖게 되었다. 이후 1991년 소련 해체로 동서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의 일원으로서 서유럽 방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냉전이 끝난 뒤 독일인 대대적인 군비 축소에 나섰다. 2차대전 패전의 여파로 사라졌다가 1956년 재도입된 징병제도 50여년 만인 2011년 다시 폐지됐다. 2차대전과 냉전 기간 ‘적’이었던 러시아와는 둘도 없이 좋은 관계가 되었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와 석유 등 값싼 에너지원은 독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모든 게 달라졌다. 나토와 유럽연합(EU)의 지도국으로서 독일은 러시아와의 거래를 끊었다. 독일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타격이 컸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무엇보다 독일은 방위력 재건이 시급했다. 그러려면 ‘21세기에 설마 전쟁이 나겠어’ 하는 마음에서 대충 방치한 군대부터 다시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국민 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주더라도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해졌다.

 

독일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가 14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주요 정당 대표들과의 재정 운영안 협상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메르츠는 그가 이끄는 CDU/CSU 연합이 최근 총선에서 승리함에 따라 오는 4월 독일의 새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다. EPA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독일의 주요 정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 사회민주당(SPD) 그리고 녹색당 지도자가 모여 국방 예산을 대폭 늘리는 재정 운영안에 합의했다. 이는 오는 18일 열릴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CDU/CSU 연합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는 협상 타결 직후 “독일이 돌아왔다”(Germany is back)고 외쳤다. 그간 경제력에선 유럽 최강을 자랑했으나 군사력은 영국·프랑스에 크게 못 미친 독일이 이제 유럽 안보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임을 내비친 셈이다. 메르츠는 “독일의 동맹국들을 향해 우리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며 “유럽의 자유와 평화 수호에 독일이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대전 전범이라는 ‘원죄’ 탓에 군비 증강에 소극적이었던 독일이 향후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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