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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1982년 발매한 ‘스릴러’ 앨범 표지 사진.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
◆음악신동, 팝의 전설이 되다=마이클 잭슨(본명 마이클 조지프 잭슨)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의 한 노동자 가정에서 일곱째 아이로 태어났다. 일찌감치 음악에 재능을 발휘해 여섯 살 때 형들과 함께 모타운 레이블에서 ‘잭슨 파이브’로 데뷔해 큰 성공을 거둔다. 이후 솔로 활동을 시작해 1976년도에 모타운에서 에픽으로 회사를 옮긴 뒤 낸 솔로음반 여섯 장은 잇달아 히트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기술·안무·투어 시스템과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꿔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낸 첫 솔로 음반 ‘오프 더 월’은 전 세계적으로 1000만장이 팔려나가며 그를 뮤지션으로 각인시켰다. 1982년 발표한 음반 ‘스릴러’는 발매 직후 37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고 그래미 8개 부문의 상을 휩쓸며 현재까지 그의 음악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까지 1억4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록됐다. 그를 대표하는 댄스 ‘문 워크’를 보여준 ‘빌리 진’, ‘빗 잇’, ‘스릴러’ 등의 히트곡이 포진해 있다.
평단은 그를 “엘비스 프레슬리의 비주얼과 비틀스의 음악적 재능을 모두 가졌다”고 평가한다. 잭슨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새 지평을 열었다는 얘기다. 그가 작사·작곡·프로듀싱 등 음악 영역은 물론이고 의상·안무·퍼포먼스 등 문화적 영역을 개척하며 유례없는 신드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는 음악전문채널 MTV의 폭발적 성장세에 큰 몫을 했을 정도다.
음악평론가 김광현씨는 “마이클 잭슨은 8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2000년대 스타들이 모두 그의 영향력 아래 있을 만큼 진정한 팝의 황제”라며 “1980년대 생겨난 MTV에서 획기적인 춤을 선보이며 오늘날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원조가 됐다”고 말했다. 팝 칼럼니스트 박은석씨는 “잭슨의 ‘오프 더 월’ 앨범은 1980년대 팝 음악계 전체를 바꾼 앨범”이라며 “잭슨은 흑인과 백인 음악을 크로스 오버시켰으며, 흑인의 솔에 백인의 샤우팅 창법을 가미해 자신만의 음색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아동학대·성형수술 등 구설=잭슨은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꾸준한 음악적 성취를 이뤘지만 그의 개인사에는 어두운 그늘이 따라다녔다. 연습 때마다 아버지가 벨트를 들고 감시하고 구타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경험했던 잭슨은 이 시기를 불행하고 고독한 시절로 기억했다. 이후 잭슨파이브와 결별한 잭슨은 퀸시 존스 아래에서 다수의 히트작을 냈다.
하지만 초기의 지나친 성공이 그에게 독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시러큐스대 팝문화 전공인 로버트 톰슨 교수는 “스릴러의 성공이 잭슨에게 지나친 부와 권력을 안겼고, 이후 그를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3년 어린이 성적학대 사건으로 구설에 오르며 1년 후 2330만달러에 이르는 합의금을 치러야 했다. 2003년에는 14세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1994년에는 당시 26세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해 대중을 놀라게 했지만, 이 결혼은 2년도 채 가지 못했다. 이후 내는 앨범마다 실패하는 비운을 겪은 잭슨은 1997년 성형수술 당시 만난 간호사 데비 로(당시 37세)와 재혼해 두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1999년 다시 이혼했다.
잭슨은 잦은 성형수술에 따른 외모 변화로도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수년에 걸쳐 피부가 얇아지는 등 갖가지 성형수술 부작용에 시달렸다. 최근까지 그는 바레인과 아일랜드, 프랑스 등을 전전하며 은둔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잭슨은 성형수술에 대해 “아버지를 점점 닮아가는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피부색 변화에 대해 잭슨은 백반증이라고 설명했으나, 언론은 잭슨이 백인처럼 피부를 하얗게 박피한 것이라며 믿지 않았다.
잭슨은 오랜 공백을 깨고 오는 7월 13일 영국 런던에서 컴백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공연 티켓은 발매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75만장 모두 매진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백소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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