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경기 평택시 원정초등학교. 천안함 희생자 고 남기훈 원사의 장남인 재민(12)군이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교장선생님한테 받은 선물 포장을 뜯고 있었다. ‘무슨 선물일까’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함 그대로다. 얼마 전 영결식장에서 ‘어린 상주’로서 보여준 늠름함과는 사뭇 달랐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경기 평택 원정초등학교에서 박귀옥 교장(왼쪽)이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학생 6명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주고 있다. 원정초등학교 제공 |
재민이는 아빠가 보고 싶을 때 휴대전화에 담긴 사진을 본다. 자기가 찍었기 때문에 정작 자기는 빠진 채 아빠와 동생만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면서도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을래요”라고 말했다.
“제가 슬퍼하면 하늘에서 아빠가 보시고 슬퍼하실 거잖아요.”
아빠처럼 자랑스러운 해군이 되겠다는 재민이는 천안함 침몰 이후 한 달여를 보내면서 아빠처럼 강해졌다.
이 학교 박귀옥 교장은 “재민이뿐만 아니라 희생자 자녀 5명 모두 평상시와 똑같은 모습”이라며 “꿋꿋하게 학교에 나오고 밝게 인사하는 걸 보면 우리 아이들이 너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재민이를 비롯해 아빠를 잃은 학생 6명은 친구들과 어울려 청백 달리기시합을 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열심히 달리고 환하게 웃었다. 교장선생님한테 선물을 받을 땐 한껏 들뜬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재민이와 5명의 아이들에게 이번 어린이날은 어느 때보다 우울할 것으로 보인다. 박 교장은 “어제 가정방문을 해봤더니 다들 아무 계획이 없었다”고 전했다. 어머니들은 담임교사와 함께 학교에서 전문가로부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상담치료연수를 받는다. 아이들끼리 집을 지켜야 할 상황이다.
아이들은 다음날 6∼7일 야외 체험학습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재민이를 비롯한 6학년 학생은 6일 경주로 1박2일 수학여행을 간다. 1∼5학년은 5일 학년별로 체험학습을 가는데, 고 박경수 상사와 김태석 상사의 딸(7·1학년)은 서울대공원으로 소풍을 간다.
박 교장은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고귀하게 희생하신 아주 자랑스러운 분’이라고 말해 준다”며 “우리가 계속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싶은데, 몇몇 어머니와 얘기해 보니 일부는 이사를 갈 것 같아 함께할 날이 많지 않은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평택=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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