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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회사인 도요타파이낸셜코리아와 폭스바겐파이낸셜코리아의 차량 사용본거지 주소로 돼 있는 경남 함양군청 전경. |
강남구 세무과 직원들은 지난 3월27∼28일 5개 리스회사의 차량 사용본거지 현장조사에 나섰다가 깜짝 놀랐다. 모두 가짜로 확인돼서다.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의 사용본거지로 돼 있는 경남 창원시 동암동 A대리점은 여러 가지 차종을 팔고 있었다. 이곳 직원은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와는 전혀 상관도 없고 지점도 아니다”고 말했다.
도요타파이낸셜코리아와 폭스바겐파이낸셜코리아의 사정은 더 충격적이었다. 이들 리스회사의 차량 사용본거지 주소가 다름 아닌 경남 함양군청으로 돼 있었다. 강남구 세무과 직원은 “‘사용본거지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함양군 직원은 ‘없다’며 미안해했다”고 전했다.
오릭스캐피털의 사용본거지인 경남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상가 1304호는 잠겨 있었다. 이 상가 관리소장은 “원래부터 직원이나 물건은 없었고 주소만 돼 있다”고 강남구 직원에게 알렸다.
KT캐피털㈜은 부산에 있는 통신서비스업체 KT 사무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강남구는 “이곳은 직원도 있지만 자동차를 주로 보관·관리·이용하는 사용본거지는 결코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또 강남구가 지난 4월 중순 이들 리스회사의 본점을 세무조사하면서 대다수 지점이나 사업장도 종업원이 없고, 면적이 4∼14㎡로 도저히 지점으로 볼 수 없는 상태임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사업자 등록을 해준 관할 세무서가 조사에 나섰다.

이렇게 법을 어기면서까지 유령 사용본거지를 만드는 것은 지자체별로 차량가격 대비 채권매입비율이 달라서다. 채권은 차량 사용본거지 지자체를 기준으로 매입하기에 리스회사들은 서울보다 채권매입비율이 크게 낮은 지자체에 사용본거지를 두면 부담이 확 줄어든다.
5개 리스회사는 이런 엉터리 사용본거지를 근거로 서울시의 도시철도채권(매입비율 차량가격의 20%) 대신 지역개발채권(〃 5∼6%)을 샀다. 그렇다면 리스회사가 본 이득은 얼마나 될까.
예컨대 1억원짜리 자동차를 등록할 때 서울시 도시철도채권(2000만원어치)을 사서 11% 할인을 받고 팔면 220만원을 지급한 셈이다. 그런데 창원시 지역개발채권(500만원어치)을 사서 11% 할인을 받고 팔면 55만원을 낸 것과 같다. 서울과 비교해 165만원의 비용이 덜 든다. 리스회사들이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것이다.
또 리스회사들이 사용본거지를 정상적으로 서울로 했다면 수천억원어치의 도시철도채권 매입이 이뤄져 최근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의 요금인상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강남구는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유령 사용본거지 관할 지자체는 지방세(시·도세)인 자동차취득세를 징수한다. 지자체들이 무리한 세입유치 경쟁에 뛰어든 이유다. 강남구 소재 5개 리스회사가 지방의 지자체에 납부한 2011년도분 차량취득세는 1130억원이다. 최근 5년간 낸 차량취득세는 2029억원에 이른다. 서울에 본점을 둔 리스회사는 25개인 것으로 강남구는 파악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강남구에 11곳이 몰려 있는데 규모가 적은 6곳을 제외한 5곳 실태만 파악했다. 나머지 리스회사의 사용본거지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강남구 관계자는 “지방에 유령 사용본거지를 만든 리스회사들은 영업지역인 서울시에 지방세 납부나 채권 매입을 하지 않고, 대여한 차량의 운행으로 교통혼잡과 도로파손, 매연 분출과 같은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자체, 유령 차량 사용본거지 등록 일조
지자체들은 리스회사의 차량취득세를 손쉽게 가져가려고 서울 강남구청 앞에 출장소를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공무원 4∼5명씩 상주시키고 있다. 함안군은 지난해 9월, 인천시 계양구는 지난 3월19일, 함양군은 3월26일 각각 출장소를 냈다.
이곳에서는 리스회사의 차량등록에 필요한 서류작성 등을 돕고, 차량취득세 고지서를 발급하고 있다. 한 출장소 관계자는 “세원발굴 차원에서 사용본거지 유치나 출장소를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지난달 차량취득세와 자동차세를 납부하는 법인에 납부금액 중 수천만원을 세수증대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되돌려줬다. 부산시와 KT캐피털㈜은 사용본거지 변경과 각종 지원을 담은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부산시는 리스차량 전담창구를 개설하고, 자동차세·친환경부담금 납부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시는 교통 관련 범칙금 납부에 따른 업무처리를 지원하고, 연간 자동차세와 차량취득세 납부액의 0.5%를 포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제주도는 리스회사 차량에 대한 자동차 취득세율을 7%에서 5%로 내리는 특례 규정을 만들었다가 타 지자체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행정안전부가 중재했고, 제주도가 이를 수용하면서 리스회사 자동차의 취득세율 특례를 백지화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강남에 비싼 임대료를 내는 출장소를 만들어 직원까지 파견하고, 리스회사에 유령 사용본거지를 납세지로 신고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지방세 성실신고 방해 행위이자 지방자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준 기자 sky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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