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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애증’ 싱가포르 방문한 안와르…‘디지털·그린 경제’로 관계 개선 물꼬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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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04 14:00:00 수정 : 2023-03-19 17: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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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취임 2개월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
안와르, 이웃 나라 방문 세 번째 싱가포르 하루 일정 국빈 방문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정상회담은 국부 후계자·아들의 회담
디지털, 그린경제 분야 협력 약속
‘60년 애증’ 근본적 해결까지는 힘들어
도서 영유권, 조호르강 물값 정상화, 생필품 수출 금지 등 갈등

동남아 지역 혹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남아는 미·중 갈등이 디폴트(고정값)로 설정된 최근은 물론 2차례의 세계대전 시기에도, 더 거슬러 중세시대에도 각축의 공간이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등 서양 강대국의 영향력이 커진 현대사 이전엔 중국과 인도가 번갈아가며 영향력을 높였던 지역이다. 이제는 수십 년 전 일본에 이어 한국도 동남아 지역에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한국은 앞서 문재인정부에서 신남방정책을, 윤석열정부에서는 신인도·태평양 정책을 내놓았다. 한국의 대외무역 분야에서 베트남 등 아세안 회원국의 비중이 커졌으며, 아세안의 외교무대 발언권은 중요하다. 세계일보는 아세안 주요 지도자를 초청해 현안을 집중 토론하는 아세안포럼을 연례 개최해 왔다.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아세안의 주요 일정과 인물을 짚는 <아세안 코너>의 부정기적 연재를 시작한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분리 독립한 국가이다. 지금이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강소국이지만, 독립 당시만 해도 싱가포르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질서 있는 퇴각 방식에 따라 식민지배를 벗어난 1957년 당시엔 말라야 연방으로 불렸다. 술탄 등이 있는 말레이반도의 주들과 영국의 해양식민지 페낭, 말라카 등이 합해져 성립된 독립국이었다. 말라야 연방은 1963년 싱가포르와 사바와 사라왁 지역을 합해 말레이시아 연방을 구성했지만, 2년 뒤 싱가포르의 분리를 지켜봐야 했다. 싱가포르의 독립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다민족 국가의 골치인 중국계 중심의 분리를 말레이시아 연방이 더 원했다는 논문과 분석도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양국은 한 뿌리를 두고 있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근거리에 갈등이 상존하는 관계라는 설명이다.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오른쪽)와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달 30일 싱가포르 대통령궁에 열린 오찬 환영행사 도중 생선회 요리 위상(魚生)을 젓가락으로 집어올리고 있다. 싱가포르=EPA·연합뉴스

#분리독립 60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와 관계 밀접

 

두 나라는 강력한 통치자의 지도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빠른 기간에 경제적인 성장을 만끽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4대와 7대 총리를 지낸 마하티르 모하메드, 싱가포르에서는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의 리더십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2023년 현재 양국의 지도자는 물론 바뀌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마하티르의 후계자·정적·협력자 관계를 거친 안와르 이브라힘이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의 아들 리센룽(李顯龍)이 부자 총리 시대를 연 지 오래다. 2022년 기준으로 양국은 서로에게 제2의 무역 상대국이다. 말레이시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는 싱가포르다. 코로나19 이후 말레이반도 조호르주와 싱가포르를 오갔던 사람이 3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안와르 총리가 지난달 30일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세번째 외국 방문이다. 그는 이달에만 8~9일 인도네시아, 24~25일 브루나이를 잇따라 국빈 자격으로 찾았다. 2월 초에는 태국을 방문한다. 필리핀을 제외한다면 인접국을 모두 방문하는 것이다.

 

안와르 총리의 싱가포르 방문은 하루짜리의 빼곡한 일정이었다. 대통령궁에서 진행된 할림 야콥 대통령의 공식 영접을 비롯해 리센룽 총리가 초대한 오찬, 말레이시아 교민 격려 등의 일정이었다. 리센룽 총리는 동남아의 넬슨 만델라 혹은 김대중(DJ)로 불릴 만한 안와르 총리 부부를 따뜻하게 환영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채널뉴스아시아(CNA)와 버르나마 등 양국 매체는 두 정상이 회담에서 3가지 사안에 합의했다며, 정상들이 양국 관계 장관들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지켜봤다고 보도했다.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왼쪽)가 생전 당시인 2005년 4월 27일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푸트라자야의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양국 정상, 디지털·그린 경제 등 협력 다짐

 

양국 통상산업부 장관은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디지털, 그린 경제 부문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국경통과에 전자결재와 전기차 충전소 확대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런 노력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디지털 경제 협력과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또한 양국 정보통신부 장관들의 합의에 따라 개인정보보호와 사이버안보 이슈에 대해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리센룽 총리는 환영 건배사에서 “양국의 파트너십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굳건했다”며 “세계적으로 공급망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지만, 양국 사이의 물자와 인적 교류는 안전하고 무난하게 이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조호바루를 연결하는 급행열차(RTS) 시스템이 완비되는 2026년에는 양국 교류가 더 원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센룽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양국 현안의 해결을 위한 건설적 논의가 이어졌다고도 했다. 그는 가까운 이웃과 친구 사이인 관계를 고려할 때, 생산적으로 협력하면 양국에 서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더했다. 안와르 총리와 함께 양국 관계를 보다 강력히 다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싱가포르에서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왼쪽 가운데)와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오른쪽 가운데)가 참석한 가운데 양국의 확대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있다. 싱가포르=EPA·연합뉴스

#“양국 현안 해결과 관계 증진 최대한 노력”

 

리센룽 총리는 안와르 총리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자신가 안와르 총리가 장관직을 수행할 때부터 30년 넘게 인연을 맺어왔다고 설명했으며, 특히 2018년 안와르 총리가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싱가포르 서밋’에서 했던 발언을 소환하기도 했다. 당시 의원이었던 안와르 총리가 자신이 취임한다면 해외 방문지로 싱가포르를 제일 먼저 찾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안와르 총리는 61년 이어진 BN(국민전선)의 장기 집권을 막아낸 힘은 지역과 민족을 포괄하는 국민적 열망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2008년과 2013년의 총선에서 중국계가 집권세력에 내렸던 ‘응징의 쓰나미’가 수년 뒤인 2018년 확대 재생산됐다는 것이었다.

 

안와르 총리는 이날도 화답했다. 그가 사용한 언어는 영어였다. 20일 전 인도네시아 방문에서는 인도네시아어(바하사 인도네시아)와 유사한 말레이어(바하사 말레이)어로 연설에 나선 것과 대비됐다. 그는 자유자재로 언어를 구사하는 싱가포르 혹은 말레이반도 정치인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줬다.

 

안와르 총리는 두 사람의 대화는 건설적이었으며, 해결되지 못한 양국 현안에 대해서도 진지한 접근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주목되는 점은 현안을 미해결 상태로 놓아둬서는 안 된다고 두 사람이 공감했다고 설명한 대목이다. 안와르 총리는 “문제 해결과 관계 증진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야콥 대통령이 곧 말레이시아를 방문하기로 했다고 확인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30일 공개 싱가포르 외교부의 성명에서는 안와르 총리의 방문이 양국의 관계를 보다 돈독하게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를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지난 1월 27일 관광명소인 머라이언파크에서 머라이언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싱가포르=로이터·연합뉴스

#마하티르·리콴유의 악연 끊어낼 수 있을까…단기간 해결은 난망

 

정상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양국 사이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의 독립에 대해 섭섭함을 느꼈으며, 싱가포르 국민들은 말레이시아 연방에 속했을 때 차별을 받았다고 여긴다는 조사도 더러 있었다. 이후 싱가포르가 물류, 금융 등의 중심지로 거듭나면서 싱가포르 사람들이 말레이시아에 대한 우월의식을 갖기도 했고, 말레이시아 정치인들은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일 뿐 이라고 여전히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부로 추앙받는 마하티르, 리콴유가 재임하던 시절 두 나라의 사이는 원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마하티르는 1980~1990년대에 싱가포르 선박들이 조호르해협을 통과하는 것을 봉쇄했다. 1990년대 말에는 아시아적 가치를 놓고 이를 높이 평가했던 마하티르와 서구 기준의 중요성을 보다 높이 평가했던 리콴유가 가치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양국의 미해결 과제는 조호르강의 물을 끌어다가 용수로 사용하는 싱가포르에 말레이시아에 제공하는 물 값에 대한 인식 차이, 싱가포르 동쪽 지역에 자리한 페드라 브랑카 섬에 대한 영유권 갈등, 지난해에 불거진 말레이시아의 싱가포르에 대한 치킨 수출 금지 조치 등이 거론된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치킨의 공급 부족으로 가격 상승이 야기된다면 싱가포르로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기도 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앞쪽)와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뒤쪽)가 지난 1월 30일 싱가포르 대통령궁에서 열린 안와르 총리의 방문 환영 행사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싱가포르=EPA·연합뉴스

안와르 총리의 방문이 양국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양국이 공개한 공식 발표 혹은 양국 정상의 발언에서는 갈등 관계가 표출되지 않았지만 오랜 인연과 악연을 쉽게 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와르 총리와 리센룽 총리가 오래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공감대 확산을 통해 낮은 수준의 갈등부터 해결 노력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통치 기간이 길어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공고해지면 문제를 해결할 여지는 커지기 때문이다.

 

<연재 순서>

 

레포르마시의 상징 안와르…30년 만에 총리에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127515344

외환위기로 몰락, 코로나로 부활…‘25년 지각 총리’ 안와르의 돌파구는?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129506371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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