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관점은 일본이 무라야마(村山) 전 총리와 고노 전 관방장관 사과를 계승하는 게 이웃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장이라는 점”이라며 “고노담화를 지지한다고 아베 정권 입장을 밝힌 일본 관방장관 성명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동아시아 주변국이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할 정도로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 정권의 태도를 사실상 방관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미·일 미사일방어(MD) 체제 추진 등 아베 정권의 정책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역사문제만큼은 미국 정부도 일본의 일방통행식 일탈에 우려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의 경우 여성 인권 차원에서 일본에 성의 있는 접근을 촉구해왔다. 지난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매우 끔찍하고 지독하고 쇼킹한 인권 침해”라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한국과 역사 문제로 갈등을 빚는 아베 정부를 우회적으로 꼬집은 것이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 중인 미국 정부는 한·일 간 협력과 공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3월 한·일 정상을 한자리에 불러 한·미·일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일본이 북한과 납치 재조사 및 제재 해제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미·일 공조에 균열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진 한국과 중국 관계를 경계하고 있다.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 인사들은 어김없이 미국 측 인사들한테서 한·중 관계에 관한 질문을 받을 정도다. 소원해지는 한·일 관계, 다가서는 한·중 관계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달 초 미국 상원 의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 추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워싱턴=박희준 특파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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