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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 고기압 장벽에 ‘대기 동맥경화’… 한반도 기상이변 주범

입력 : 2017-02-27 19:41:59 수정 : 2017-02-27 19: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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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블로킹’ 현상 심화

“우럭 치어를 사다가 시장에 내다 팔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어유?”

지난 7일 충남 서산 부석면 창리 어촌계장 배영근(49)씨가 바다 위 가두리양식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럭은커녕 예전에 기른 금붕어의 수명도 모르는 기자가 멍한 얼굴로 쳐다보자 배씨가 스스로 답했다.

“3년유. 근디 2010년부터 딱 3년마다 우럭이 죽어나갔슈. 2010년에는 곤파스(태풍)가 이쪽을 정통으로 훑고 지나갔고 2013년이랑 2016년에는 고수온 때문에 다 죽은겨.”

역대급 폭염이 한반도를 덮친 지난해 8월. 배씨가 기르던 우럭 14만마리가 허연 배를 드러내며 속수무책으로 떠올랐다. 금액으로 치면 2억∼3억원어치가 정화조 차에 실려 가 소각됐다. 보험금을 받고도 8000만원의 빚이 생겼다.

폭염으로 양식장 우럭 폐사 지난해 8월 충남 서산 창리 주민들이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폐사한 우럭을 건져내고 있다.
배영근씨 제공
그는 “몇 년 새 이 마을 26가구 중 10가구가 낚시터로 업종을 바꿨다”며 “고수온은 어디 도망갈 데도 없어 연타로 맞으면 나도 때려치워야지…”라고 한숨만 지었다.

폭염과 한파, 가뭄, 폭우 같은 이상기후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기상이변의 배후에는 늘 ‘블로킹 하이’(blocking high·이하 블로킹)라는 거대 세력이 버티고 있다. 지난달 중순과 이달 상순(9∼12일) 찾아온 한파도 과거의 삼한사온과 달리 블로킹이 ‘비선실세’처럼 뒤에서 일으킨 현상이다. 기후 전문가들은 앞으로 블로킹 현상이 더 독하고 강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블로킹 - 온난화가 일으킨 ‘대기 동맥경화’

블로킹이란 커다란 고기압 덩어리가 한 지점에 머물며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꼼짝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대기가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이상고온·저온 같은 기상이변을 일으킨다.

블로킹이 만들어지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체적인 과정은 이렇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북위 30∼60도 상공에는 제트기류라고 하는 강한 바람이 지구를 감싸고 돈다. 제트기류는 초반엔 남북으로 요동치지 않고 일직선으로 곧게 달리다가 점점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시점, 어느 지점에 가면 흐름이 툭 끊기고 그곳에 거대한 고기압이 산맥처럼 생겨난다. 이게 바로 블로킹이다. 약 80%의 블로킹이 북미∼유럽 사이의 북대서양과 아시아∼알래스카 사이의 북태평양 상공에서 생긴다.

여기까지는 온난화와 관계없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제트기류가 구불구불 움직이는 현상이 더욱 빈번해졌다. 그만큼 블로킹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블로킹이 주로 출몰하는 지역은 러시아 우랄산맥 쪽이다.

서울대 손석우 교수(대기과학)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 블로킹 발생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실험한 결과 북대서양과 북태평양의 블로킹은 줄고 우랄 블로킹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손 교수는 “우랄과 가까운 바렌츠해(북극해 동경 40도 주변)는 북극에서 가장 온도가 빨리 올라가는 지역”이라며 “아직 가설이기는 하지만, 바렌츠해의 급격한 온난화가 우랄 블로킹 증가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술로는 예측 어려워

우리가 블로킹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 날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9∼12일의 날씨를 떠올려보자. 9일부터 나흘 동안 서울 지역 온도가 평년보다 5도 아래로 떨어졌다.

시간을 조금 앞당겨 2월 초 일기도부터 살펴보면 2일 베링해 지역에 제법 큰 세력의 고기압이 나타났다. 전날만 해도 별다른 낌새가 없었는데 하루 사이에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깜짝 등장한 것이다. 블로킹이 생기면 그 주변 공기는 빨간 신호등에 걸린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버린다.

베링해에 생긴 고기압 덩어리의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차가운 공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그 결과는 기습 한파와 울릉도 폭설 등으로 나타났다.

이번 고기압은 약 열흘 만에 사라져 블로킹치고는 단명했다. 그 덕분에 이번 한파도 짧고 굵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블로킹의 수명이 길면 길어질수록 그 피해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지난해 여름 크게 발달한 우랄블로킹의 여파로 동아시아 일대까지 대기 흐름이 정체되며 우리나라 동쪽에도 블로킹이 생겼다. 우랄블로킹이 새끼치기를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반도는 중국대륙에서 몰려오는 열파를 고스란히 떠안으며 기록적인 무더위를 맞았다.

세계적으로 사상 최악의 ‘열파’는 2003년 유럽(7만여명 사망), 2010년 러시아(5만여명 사망)로 기록되는데 이때도 블로킹이 주범이었다.

극지연구소 김백민 책임연구원은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을 매개하는 것이 블로킹”이라며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블로킹도 더 자주 유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블로킹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시작 단계다. 그러니 예측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기상청 기후예측과 이현수 사무관은 “블로킹 원인 중 설명가능한 부분은 20%도 안 된다”면서 “현재로선 이미 만들어진 블로킹을 감지해 언제 소멸할 것인지 내다보는 게 최선”이라고 전했다. 블로킹은 아픈 지구가 인류에게 보낸 해독 불가의 블랙박스라는 이야기다.

서산·인천=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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