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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흰 만들어, 우린 쓸게’… 온실가스 감축 ‘환경 부정의’ [기후위기 도미노를 막아라]

입력 : 2020-07-10 13:32:08 수정 : 2020-07-13 09: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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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대한민국 기후위기 지도 / 석탄발전소 몰린 충남 ‘탄소 감축’ 리스크 1위 / 대한민국 탈석탄 위험지도 작성 / 高위험 지자체 당진·보령·태안順 / 지역내총생산당 배출량도 1위 / 발전소 폐쇄 땐 지역경제 ‘휘청’ / 전력 사용량 많은 서울·경기 안정권 / 국제사회 오염산업 후진국에 떠넘기 듯 / 국내서도 감축 리스크 지역별 편차 커 / 서울 서초·강남구 나란히 하위 1·2위 / 용산·송파도 10위권… 경기 성남시 6위 / 적응 리스크는 지역사회 인프라 중요 / 65세 이상 인구 비율·온도 상승폭 등 변수 / 대구 중구·서구 기온 상승폭 등 비슷해도 / 인구당 의료기관수 차이로 위험도 큰 격차 / “사회경제적 노출변수도 기후변화에 영향” /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기준 / 의무량 산출 사업장 소재지별 집계

오랫동안 탄소배출은 공짜였다. 화석연료와 함께 돌아간 세계 경제는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안겼다. 탄소를 내뿜은 대가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건 그저 지구에 조금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이제 탄소배출은 공짜가 아니다. 기후변화를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위기감 속에 ‘탄소 제로’를 선언하는 나라와 기업이 늘면서 탄소 저감이 경쟁력이 됐다

 

우리나라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곤 단 한 차례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본 적이 없다. 하지만 국제 환경의 변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이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를 키워야 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정부는 오는 14일 새로운 길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세계일보는 이 같은 경제·사회 구조의 대대적인 전환 과정에서 놓인 위기(리스크)와 해결 방안을 짚어보는 ‘기후위기 도미노를 막아라’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우선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각종 통계 수치와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229개 지방자치단체의 기후변화 위험도를 측정했다. 이른바 ‘대한민국 기후위기 지도’다. 탄소배출 감축 등으로 인한 지자체의 경제·산업적 위험도를 지표화하는 것은 국내 언론 가운데 최초다.

 

기후변화 문제는 크게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으로 구분된다. 기후위기 지도도 두 부분으로 나눠 작성했다. 분석 결과 탄소배출 감축 리스크(위험)가 가장 큰 지자체는 충남 당진으로 나타났다. 충남 보령과 태안이 뒤를 이었다. 리스크가 높은 상위 10곳 중 5곳이 충남이다.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60기 중 절반(30기)이 몰려 있는 게 큰 이유였다.

 

기후위기 지도
감축 리스크  합산
IPCC의 권고대로 이번 세기 말 지구 기온이 1.5도 이상 오르지 않게 하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기업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비용을 들여 탄소 배출권을 사와야 합니다. 국제적으로는 탄소를 내뿜어 만든 제품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즉, 이산화탄소 배출에 경제적 부담이 뒤따르게 된 셈이죠. ‘감축 리스크’는 온실가스 감축 과정에서 각 지역이 얼마나 리스크에 노출됐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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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DP당 배출량

지역 내 주요 배출기업 감축 의무

지역 내 좌초위기산업 고용인구

재정자립도

지역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역내총생산(GRDP)으로 나눈 것입니다. 한 지역의 부가가치가 온실가스를 내뿜어서 만들어졌다면, 그 지역의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겠죠.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이나 제철소가 있는 전남이 그런 경우입니다.
적응 리스크  합산
기후위기로 폭염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피해가 모든 지역에서 고르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지역의 인구 구성과 인프라에 따라 피해는 더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합니다. 지리적 영향으로 지역별 기온 상승폭도 다릅니다. ‘적응 리스크’는 실제 각 지역의 기온이 얼마나 오를지, 건강상 피해는 어디서 많이 발생할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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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고령층 인구비율

인구 당 의료기관 수

평년대비 2030년 평균기온 상승폭

2030년 열대야 일수

제작 : 송승제, 양혜정

 

◆당진 위기지역 1위… 충남에 몰려

 

감축 리스크는 △지역내총생산(GRDP)당 배출량과 △지역 내 주요 배출기업 감축 의무 △지역 내 좌초위기산업 고용인구 △재정자립도를 이용했다.

 

GRDP당 배출량은 한 지역의 부가가치가 온실가스 배출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인데, 충남이 압도적인 1위였다. 게다가 당진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로드맵’에 따라 기업들이 10년 동안 줄여야 할 온실가스양도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보령과 태안도 비슷한 상황이다.

충남도는 2050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충남 에너지전환 비전 2050’을 2018년 발표했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 충남이 풀어야 할 숙제는 비전처럼 간명하지 않다.

 

지난달 충남연구원이 발표한 ‘노후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쇄와 친환경에너지 전환 타당성 연구’를 보면 발전사업을 포함한 전기사업은 당진과 보령, 태안, 서천의 특화산업이다.

 

보통 입지계수(LQ)가 1보다 크면 지역 특화산업이라고 보는데 보령의 전기사업 LQ(종사자 기준)는 16.52, 태안은 19.14나 된다. 발전소가 이 지역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다. 발전소가 있으면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 지방세 확보 같은 일반적인 경제효과 외에도 지역자원시설세(당진·보령·태안 각 70억원가량)를 받을 수 있다. 발전소 반경 5㎞ 이내 마을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연간 60억∼70억원대의 지원금도 받는다.

충남도에서 탈석탄은 지역 경제의 뼈대를 바꾸는 일이다. 발전소가 직간접적으로 고용한 8000여명의 일자리, 부가가치, 각종 지원금을 다른 무언가로 갈아 끼우는 대수술이다. 울산 동구와 경남 거제는 좌초위기 산업에 고용된 인구가 많아 고위험 상위 10곳에 포함됐다. 좌초위기 산업은 석유화학, 자동차, 플라스틱, 조선처럼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 지금 상태로 지속가능하기 힘든 산업을 말한다. 울산 동구에는 현대중공업이, 거제에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있다. 지역경제의 축이었던 산업이 기후위기 시대에는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이 된 셈이다.

전남 광양·여수, 충남 아산·서산도 마찬가지다. 이들 지역은 제철소와 석유화학·정제기업, 자동차 공장 등으로 지역 경제를 지탱해왔지만, 앞으로 이들 기업이 저탄소 산업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도미노처럼 쓰러질 수 있다. 더구나 고위험 지자체 중에는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2019년 기준 44.9%)의 절반도 안 돼 산업·일자리 전환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전력 사용 많은 서울·경기는 안정권… ‘환경 부정의’

 

이에 반해 감축 리스크가 낮은 10위권에는 서울과 경기도가 포진했다. 그중에서도 ‘부자 동네’로 꼽히는 지역들은 위험과는 거리가 멀어다.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가 나란히 감축 리스크 하위 1·2위를 차지했고, 용산구(5위)와 송파구(7위)도 안정권에 들었다. 경기도에선 성남시가 6위를 차지했다. 이런 결과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공통된 과제 앞에도 ‘환경 부정의’(environmental injustice)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너지통계 연보를 보면 전국에서 전력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도다. 전국에서 생산된 전력의 23%가 경기도에서 사용된다. 서울은 3위다. 2위는 충남인데 대형 사업장이 많아서다. 충남에 국한된 전력 수요가 아니라 전국에 공급할 물건을 만들어내라 쓰는 전력이 많다는 뜻이다.

오로지 해당 지역민을 위한 사용량이라 할 수 있는 가정·상업용 전력만 놓고 보면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경기 두 곳에서 44%를 쓴다. 반면, 두 지역이 만들어내는 전력량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자동차나 플라스틱 등 각종 재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도 서울·경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리스크는 이 두 곳에서 가장 낮다.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이 후진국으로 오염산업을 넘긴 뒤 말끔한 최종재만 수입해온 것처럼 국내에서도 ‘오염산업 떠넘기기’가 벌어진 결과다. 안영환 숙명여대 교수(기후환경에너지학)는 “그린 뉴딜로 일자리 창출 사업을 할 경우 감축 리스크가 큰 지역부터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감축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 폭을 줄이자는 대응 방식이라면, 적응은 이미 상당 수준 진행된 온난화의 영향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초점을 맞춘다.

 

기후위기 적응 리스크는 △인구당 의료기관 수 △2030년 예상되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 △온도 상승 폭 △열대야 일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적응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는 연제구(리스크 1위)를 포함한 부산 5개 자치구(영도·남·서·동구)가 10위권에 들었다. 적응리스크는 지역 사회 인프라가 온난화 리스크를 높이거나 낮추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대구 중구와 서구는 기온 상승폭과 열대야 일수, 고령인구 비율이 비슷하지만 인구당 의료기관 수에서 4배나 차이가 났다. 그 결과 대구 서구는 위험도가 큰 9위에 올랐지만, 중구는 하위권에 남을 수 있었다.

 

서울 강서구와 강원 춘천시는 고령인구 비율 추계치와 기온 상승폭, 인구당 의료기관 수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 대신 예상 열대야 일수가 강서 19.8일, 춘천 1.0일로 크게 벌어졌다. 열대야는 도시화와 관계 깊다. 길거리를 덮은 아스팔트는 도시 안에 열을 붙들어두는 주범이다. 아스팔트로 달궈진 공기는 빽빽이 들어선 건물에 막혀 밤이 돼도 외부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감축과 달리 적응 부문에서는 양천·영등포·송파구 등 서울 지자체 여러 곳이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기후대기안전 본부장은 “기후변화 영향은 기상변수 외에 사회경제적으로 결정되는 노출변수로도 결정된다”며 “고령자, 저소득층, 야외노동자, 1인가구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229개 기초단체 자료 분석 감축·적응 부문 지표 제작

 

‘대한민국 기후위기 지도’는 감축 부문과 적응 부문 각 4개 지표로 제작됐다. 지표 모두 22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자료를 이용했으나 감축 부문 ‘지역내총생산(GRDP)당 배출량’은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의 한계로 각 시·도를 한 묶음으로 봤다.

 

‘지역 내 주요 배출기업 감축 의무’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에 참여하는 5대 업종(발전·에너지,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의 2018년 배출량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로드맵’에서 제시하는 2030년 배출 목표를 토대로 감축 의무량을 구하고 이를 사업장 소재지별로 집계했다. 단, 사업장별 배출량은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상 비공개 자료여서 사업장이 두 군데 이상일 경우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생산실적에 비례해 배분했다.

 

‘지역 내 좌초위기산업 고용인구’는 탄소 집약도가 높은 석유화학 및 정제, 자동차, 플라스틱, 시멘트, 철강, 조선과 관련된 산업을 한국표준산업분류 소분류에서 골라 시군구별 고용인구를 정리했다.

 

적응 부문의 ‘2030년 고령층(65세 이상) 인구비율’과 ‘인구당 의료기관 수’는 환경부의 ‘229개 지자체 폭염위험도’(2019년)와 ‘폭염 취약성 지수’(2018년)를 참고해 선정했다.

 

2030년 평년 대비 평균기온 상승폭과 열대야 일수는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 가운데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RCP 8.5) 전망치를 골랐다.

 

지표마다 단위가 제각각이므로 0∼1의 값으로 표준화했다. 감축과 적응 각 4개의 지표를 하나의 지도로 담는 합산 작업에는 계층화분석과정(AHP)을 적용했다. 전문가에게 지표의 상대적 중요도를 묻는 쌍대비교로 가중치를 구하는 방법이다. 지표 선정은 숙명여대 안영환·유승직 교수가, AHP 설계는 ‘복합지표를 이용한 국가별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논문을 쓴 숙명여대 석사과정 고도연씨가 도움을 주었다. 쌍대비교 설문에는 환경경제·대기과학·시민단체 관계자 15명이 참여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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