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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처서(處暑)였다.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처서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자리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러나는 때다. 귓가를 맴돌던 매미 울음 대신 귀뚜라미가 아침저녁을 차지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새벽녘에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밀려든다. 한여름 뙤약볕이 누그러지고 잡초의 성장이 더딘 시기다. 논두렁 풀을 깎거나 조상묘를 찾아 벌초하는 풍경이 익숙해진다.

처서 무렵 날씨는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한다. 비록 가을이 왔다지만 자고로 하늘은 맑고 모름지기 햇살은 뜨거워야 한다. 벼의 이삭이 패는 때라 강한 햇살은 필수다. 다른 곡식과 과수들도 마찬가지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라 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에 든 쌀이 줄어든다’는 옛말이 있다. 선조들은 처서비가 자주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며 아주 싫어했다.

요즘 때늦은 가을장마가 난리다. 7월 중순 ‘반짝’ 여름장마 이후 찜통더위가 이어진 것과 대비된다. 어젯밤에는 제12호 태풍 ‘오마이스’까지 남부지방을 강타했다. 제주와 남부지방에는 최고 400㎜ 이상의 폭우를 뿌렸다. 여름을 지배하던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와 충돌해서다. 기상청은 다음 달 초까지도 한반도 상공에 발달한 ‘남고북저’(南高北低) 기압 배치가 형성, 충청도와 남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마(水魔)는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중부지방에 물폭탄을 퍼부은 1984년 가을장마가 연상된다. 당시 인명 피해만 189명이었고 2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장맛비가 계속되면서 농가들 시름도 깊어진다.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차례상 물가에도 비상이 걸릴 게 자명하다. 주요 추석 성수품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원화 하락, 달러 상승으로 수입 물가도 들썩거리고 있다. 지난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는 가계소득이 역대 최대로 줄었다. 반면 지출은 10년 이래 가장 많이 늘었다고 한다. 코로나19에 가을장마까지 겹쳐 지친 서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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