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운전을 법적으로 금지했던 유일한 나라. 전 세계 무슬림이 하루 여러 차례 기도하기 위해 머리를 향하는 도시 ‘메카’가 있는 곳.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이슬람법(샤리아)을 법체계로 채택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종교적 규율이 지배하는 사우디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부터 이틀 동안 서부 해안도시 제다에 머물며 사우디의 변화가 시작되는 모습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우선 도로에 여성 운전자가 제법 눈에 띄었다. 특히 신형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운전석에는 높은 확률로 여성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2018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우디에서 여성이 외출할 때 남성 가족을 동반하거나 운전기사를 고용해야 했다. 제다에 있는 기아 쇼룸에서 만난 관계자는 “여성 운전 허용 이후 여성 고객 사이에서 소형 SUV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구매는 남성이 하지만, 실제 운전자는 가족 중 여성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고객층이 유입되며 사우디의 자동차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길에서 목격한 차량 브랜드와 종류가 그 어떤 나라보다 다양해 소비가 활발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 KGM 등 우리 국산차를 포함해 일본,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의 브랜드가 세단과 SUV,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가릴 것 없이 보였다. 전기차 중에서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MG, 중국 제일자동차의 베스튠 등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중국 브랜드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사우디의 판매 통계를 보면 올해 8월 기준 점유율 상위 3개 브랜드(도요타·현대차·기아 순)가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수십 개 군소 브랜드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굳건한 1위 일본 브랜드를 한국 브랜드가 바짝 추격하고, 점유율 5% 미만의 여러 중국 브랜드가 경쟁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형국이다. 사우디에는 자국 브랜드가 없기에 국가별 심리적 장벽도 더욱 없는 듯하다.
사우디의 거리가 현재라면, 중동 최대 모터쇼인 제다 국제 모터쇼에서는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중국 브랜드는 이번 행사에서 신차 발표회를 가진 14개 완성차 업체 중 8개를 차지했다. 2030년 300만대 규모로 예상되는 중동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이번 모터쇼에서 차량을 대거 출격시킨 것이다.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 진출에 성공한 전기차 회사 BYD는 여러 모델을 전시하며 자국보다 높은 가격표를 붙이는 자신감을 보였다. BYD 관계자는 “전기차의 우수한 성능과 저렴한 유지비를 고려하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바짝 긴장해야 할 한국 자동차 기업에는 악재가 쌓여 있다. 미국 대선 등 대외적 변수는 기업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적은 문제이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노사갈등 등 대내적 변수가 문제다. 당장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가 지난해 영업이익 2배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시작한 총파업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며 현대차 공장 라인 일부가 멈췄다.
전기차 시장의 전환기를 맞아 세계 2위 폴크스바겐그룹조차 창사 이후 처음으로 독일 공장 폐쇄를 검토할 정도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극한 대립을 끝내고 미래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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