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 분단의 질곡 극복해야
탈냉전 시대 이끈 문선명·한학자 총재
北·蘇 지도자 만나 화해·협력 적극 모색
한반도 정세 변화 ‘기념비적 사건’ 평가
2030 중심으로 통일 부정적 인식 확산
남북 교류 패러다임 대전환 필요 시점
DMZ 평화적 활용 등 ‘제3의 길’ 찾아야
러시아가 도발한 러·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이 됐고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한반도와 대만해협 긴장 수위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으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넘어 북·중·러 연대가 공고해지는 기류다. 신냉전 시대의 대립 심화는 한반도 분단 상황을 더욱 고착화하고, 통일의 동력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광복 8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위기를 딛고 한 단계 도약하려면 한반도 평화 통일은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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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옛소련과 북한을 방문해 한·소 관계 정상화를 촉진하고,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대립 속에서도 평화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역사를 돌이켜보며 민간 외교와 경제 협력을 통해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고,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소 지도자와의 역사적 만남
1990년 4월 11일(현지시간)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모스크바 크레믈궁에서 당시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회담을 가졌다. 세계일보 회장 자격으로 세계언론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 문 총재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가진 것이다. 회담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한반도 통일에 대해 “우리 모두 한반도 문제를 긍정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소련이 남북한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문 총재에게 소련의 개혁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며, 문 총재는 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주변 국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듬해인 1991년 11월 30일에는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 방문 기간 중인 12월 6일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 ‘화해와 협력을 위한 남북공동합의’를 이끌어냈다. 문 총재와 김 주석 회담은 함경남도 함흥시 흥남구역(옛 흥남시)의 마전에 있는 김일성 주석 공관에서 진행됐는데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에 비해 9년 가까이 앞서 이뤄진 것이다. 당시 남북공동합의서에는 이산가족 상봉과 핵 에너지의 평화적 사용과 핵사찰 수용, 평화적 경제 사업,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이 포함됐다. 문 총재는 북한 고위 간부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비판하면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강변해 동행한 수행단을 긴장케 했다고 한다.
방북 소감에 대해 문 총재는 “나는 적의 심장부에 간 것이 아니라, 형제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밝혔다. 김 주석도 “우리는 이념과 신앙을 달리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화답했다. 김 주석은 미국 방문 의사를 밝히며 문 총재에게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문 총재는 북한이 이라크와는 다르다는 점을 미국 측에 강조하며 도움을 주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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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전환기를 이끌어내다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소련 및 북한 방문은 냉전 종식과 한반도 정세 변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념적 대결이 여전했던 냉전 시대에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 ‘동토의 나라’ 북한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데다 만남의 결과가 탈냉전 흐름을 만드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소련 방문이 이뤄진 시점은 내부적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개혁·개방) 정책이 강한 저항과 반발에 부딪히던 상황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그에게 문 총재는 “소련의 변화가 세계 평화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며, 개혁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이 한반도 평화와 한·소 관계 정상화에 대해 의견을 나눈 직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99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그해 9월 한국과 소련은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었다. 한·소 수교는 냉전 체제에서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는 전환점이 됐다.
문·한 총재의 북한 방문 역시 남북 관계에 의미한 바가 컸다. 과거 반공·승공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 북한 최고지도자와 회담을 가진 것만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산국가의 테러 위협을 받던 문 총재는 김 주석을 만나 북한이 경제 개방을 통해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북한은 소련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외부 지원이 절실했기에 이를 활용한 논리였다. 종교를 통제하던 북한은 국제적으로 개방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문 총재를 초청했고, 이후 종교·경제 분야에서 북한이 점진적으로 외부와 접촉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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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80년, 질곡의 역사 넘으려면
국내외 정세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과제를 더욱 풀기 어렵게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G2가 대립하고 북·중·러 연대가 더욱 공고해지면서 외교적 해법을 찾기 힘들어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탕·냉탕을 오가는 대북 정책과 극심한 진영 정치는 초당적으로 대응해야 할 통일이라는 과제를 뒷전으로 미뤄놓았다.
통일,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지난해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3명 이상은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고, 20·30대 젊은 세대에게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특히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2024 통일 의식 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6.9%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35.0%로 역대 가장 높았다. 북한에 대한 적대 의식은 2021년(11.2%)부터 2022년(13.6%), 2023년(18.6%), 2024년(22.3%)까지 3년 연속 상승했다.
반공운동을 펼치면서도 북한과 직접 교류하며 대화를 시도한 문 총재는 정치적 경계를 넘으며 남북 간 종교·경제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단절에 가까워진 남북 관계가 통일을 향해 가려면 이러한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기복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UPF 강원도회장은 본지 기고를 통해 “남북 통일, 교류와 관련해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가 됐다”며 “강대강 대립이 지속되는 만큼 민간운동 차원에서 남북 양쪽에 명분이 있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분단으로 끊긴 한반도 허리,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평화원(平和苑) 프로젝트’ 등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해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정부 출범을 계기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1기 정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던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김 위원장과 접촉해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사례에서 보듯 일회성 회담이나 합의로 한반도 정세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내부적으로 평화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민·관 차원의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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