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조인성이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각인된 대체불가의 존재다. 1998년 데뷔 이후 29년간 톱배우의 위치를 지켜온 그에게, 세상은 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카메라 밖에서 조용히 짊어지고 온 ‘진짜 무게’는 달랐다. 지난 10년, 조인성은 자신의 결실을 남몰래 어디론가 꾸준히 흘려보내고 있었다. 대중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가 묵묵히 다져온 ‘나눔의 지도’를 확인한 이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었다. 도대체 무엇
어린 시절의 문도엽은 몰랐다. 서른다섯에 태극마크를 달게 될 줄은. 세계랭킹 203위. 이번 아시안게임 남자 골프 대표 셋 중 가장 낮은 랭킹, 유일한 국내파, 유일한 30대다. 이름 석 자는 낯설지 몰라도, 그를 아는 이들은 입을 모아 “바른 청년”이라고 한다. 이미 국내 투어에 자리 잡았고 병역도 마쳤다. 아시안게임은 상금이 걸린 대회도 아니다. 그런데 문도엽은 국가대표를 원했다. 지난 5월 대한골프협회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실종신고를 허위로 종결한 제주 경찰관은 업무가 늘어난다는 부담감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경찰청은 1일 부모(34) 경장 검찰 송치 전 이뤄진 공식브리핑에서 “부 경장이 ‘실종자가 일반적인 성인이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사건 미종결 시 챙겨야 할 일이 많아 사건 인계에 대한 부담감으로 허위 종결을 하게 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발표했다.부 경장 조사 때 투입한 프로파일러(심리분석관 5명)도 누적된 업무 부담과 책임 가중에 대
농촌에 뜬 이동식 슈퍼 ‘행복마차’… “자식만큼 반갑죠” [밀착취재]31일 오전 경기 연천군 군남면 옥계1리 마을회관. 이업순(88) 할머니는 오전 9시30분부터 마을회관에 앉아 ‘행복배달 소통마차’(행복마차)를 기다렸다. 이날 빗길 탓에 약속한 시간보다 5분 늦은 10시5분, 노란색 1t 트럭이 마을회관 앞에 멈춰 서자 할머니 얼굴이 밝아졌다. 이 할머니가 챙겨야 할 장바구니는 자신의 것만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인 ‘은영
‘중식 제공’은 짜장면 준다?… 떨어지는 문해력, 일상이 헷갈린다 [심층기획-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엄마, 내일 점심에 짜장면 준대.”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학부모 A씨는 최근 체험활동을 앞둔 중학생 자녀가 신이 나서 하는 말을 듣고 안내문을 다시 펼쳐봤다. 안내문에는 ‘중식 제공’이라고 적혀 있었다. A씨는 “처음에는 그냥 모르는 단어 하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와 얘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뜻을 모르는 단어가 많은 것 같아 걱정된다”고 털어놨다.자
[설왕설래] 아메리카호(湖) 미국과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선을 접한다. 단일 국경선으로는 러시아·카자흐스탄(7644㎞)이 최장이나 미국 본토(6416㎞)는 물론 알래스카(2475㎞)와의 국경선을 모두 고려하면 미·캐나다(8991㎞) 간이 제일 길다. 양국 국경이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비무장 평화지대는 아니었다. 미국의 북진에 영국령 북미(캐나다)는 긴장 상태였고 지금도 남아
[김기동칼럼] 관행이 헌법을 앞설 순 없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악당 프로크루스테스는 여행자를 붙잡아 자신의 철제 침대에 눕혔다. 사람의 몸이 침대보다 길면 일부를 잘라냈고, 짧으면 억지로 늘렸다. 어떻게든 자신의 기준과 욕구에 따라 잔혹하게 끼워 맞추는 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자기만이 절대적 기준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법을 무시하는 일이 일상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헌법 위에 ‘국민정
[기자가만난세상] 기후위기 시대의 스포츠 프로야구 경기가 비로 취소되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제 야구를 멈춰 세우는 것은 비만이 아니다. 폭염이라는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기록적인 폭염 속에 올해 8월 5일부터 9일까지 예정됐던 25경기를 모두 취소했다. 기상 현상 때문에 정규시즌이 사실상 중단된 이례적인 일이었다. 야구장 그라운드에 놓인 온도계가 50도를 가
[김태웅의역사산책] 조선의 소와 아이들을 그린 이중섭 1956년 9월13일 모 신문에서 화가 이중섭이 숙환 위장병으로 9월6일 서대문 소재 적십자병원에서 별세했다는 부고 기사를 실으면서 “새롭게 개성적인 화법으로 독자적인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향년 41세였다. 다만 그의 별세 소식이 왜 늦게서야 보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망 후 연고자가 없는 것으로 처리